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영상(李永祥)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40741
  • 전몰일자 : 19510619

공훈사항

이영상 일병은 충청남도 서산군 원산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이 발발한 이후에 국군과 유엔군이 38선을 돌파하여 북진작전을 실시하던 1950년 10월 14일, 제주도 모슬포의 육군 제5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하고 제6사단 제2연대로 배치되었다.
이영상 일병이 부대로 전입했을 때인 1951년 12월 중순, 제6사단은 전곡-백의리에 방어진지를 점령하고 있었다. 이후 중공군의 제3차 공세(신정공세)가 시작되었고, 당시 제6사단은 장호원 부근의 적산리로 철수하여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그리고 중공군은 2월 11일에 2월 공세를 개시했다. 군단은 지평리-원주 선에서 격퇴하고 반격작전으로 전환했다.
이영상 일병이 소속된 제6사단은 반격 시에 북한강 남안의 가평-의암선까지 진출한 후 3월 22일부터 북배산-수덕산-지암리 방향으로 공격하여 4월 6일에 화악산을 점령하고 계속 공격하여 사창리까지 진출했다. 이곳에서 사단은 4월 22일부터 시작된 중공군 4월 공세로 큰 피해를 받고 가평을 거쳐 27일에 용문산 일대로 철수했다. 그가 소속된 제2연대는 용문산 전방에 전초진지를 편성하여 점령했다.
대규모 중공군은 5월 16일부터 공격(일명 중공군의 5월 공세)을 했다. 이영상 일병이 소속된 제2연대는 전초진지에서 전면방어로 방어진지를 사수하여 적 전투력을 약화함으로써 사단 작전에 크게 기여했다. 사단은 5월 24일부터 용문산에서 출발하여 계관산-북배산을 점령한 뒤, 26일에 춘천 동북방으로 진출하여 28일 화천저수지까지 진출했다.
제6사단 장병들은 부대정비를 한 후 6월 6일부터 다시 공격하여 10일에는 최종 목표인 취봉(987고지)을 점령했다. 이후 방어로 전환하여 제7, 제19연대를 당거리-782고지-1057고지에 배치하고, 이영상 일병이 소속된 제2연대는 백암산 남쪽 기슭에 배치했다. 그러던 중 유엔군과 공산군이 휴전 협상을 진행하면서 전선은 소강상태에 들어갔다. 이에 장병들은 방어진지 보강과 적정을 파악하기 위해 수색작전을 강화했다. 그가 소속된 소대는 6월 19일에 수색작전을 나갔다가 적 매복조를 발견하여 격멸했으나, 그는 용감하게 전투하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영상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16판-4면-136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44-ㅁ-015)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