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영상(이영상)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501851
- 전몰일자 : 19510502
공훈사항
이영상 하사는 1925년 9월 10일 경상북도 경주군 천북면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음에도 정치·사회적으로 여전히 혼란스러웠던 1949년 7월 13일, 전남 광산의 제20연대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예하 대대에 배치되었다.
6·25전쟁이 발발한 이후 제20연대는 8월 27일에 경북 영천에서 창설하여 10월 초에 광주로 이동하여 지리산 서남쪽 지구에 대한 게릴라 토벌작전을 실시했다. 당시 제11사단은 호남지구 게릴라 토벌작전을 크게 3단계로 구분하여 수행했다. 제1단계 작전은 1950년 10월 1일∼10월 25일까지로 사단의 주력이 호남지구에 집결한 후 각 지구 행정기관의 복구 및 적정 수집을 하는 한편, 장병들에 대한 전투 훈련에 주력하면서 소규모 토벌작전을 실시한 시기였다. 제2단계 작전은 11월 1일∼12월 31일까지로 소위 ‘견벽청야(堅壁淸野)’ 작전 개념에 의거 산간벽지에 있는 민간인들을 소개하고 게릴라의 보급로를 차단해 적을 기아 상태에 몰아넣는 한편, 유리한 거점을 확보하여 게릴라 소탕에 주력한 시기였다. 이영상 하사가 소속된 제20연대는 10월 초에 지리산 서남쪽 지역에 대한 게릴라 토벌작전을 적극적으로 실시했다. 연대는 11월 1일부터는 유리한 거점을 확보하여 보다 적극적인 게릴라 소탕작전을 실시했다.
제3단계 작전은 1951년 1월 1일부터 4월 초까지로 게릴라의 근거지를 파괴하는 데에 전 병력을 집중한 시기였다. 제20연대는 1951년으로 접어들면서 게릴라들의 강력한 저항에 맞서 근거지 파괴와 지도 인물 체포를 통해 게릴라의 재집결을 봉쇄한다는 목표를 두고 작전을 전개했다. 제20연대는 강력히 저항하는 게릴라를 완전 소멸시키기 위해 2월부터 회문산과 백아산 일대에서 실시하여 공비를 완전히 격멸했다. 이후 제11사단은 4월 6일 호남지역 공비토벌임무를 제8사단에 인계하고, 동해안 양양으로 이동했다.
그는 매사에 적극적이었고 언제나 선두에 서서 용맹을 발휘하였다. 이영상 하사는 소대원들과 함께 적진정찰 임무를 수행하던 중 매복해 있던 북한군의 포격으로 1951년 5월 2일 양양 부근 전투에서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영상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44판-7면-032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121-ㅁ-075)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