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영생(李永生)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60226
  • 전몰일자 : 19500815

공훈사항

이영생 일병은 경상북도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지연전을 하며 낙동강 선으로 철수하던 1950년 7월 10일, 경북 상주에 방어진지를 편성하고 있던 제17연대로 현지 입대하여 바로 전투에 투입되었다.
이영생 일병이 현지 입대하기 전, 제17연대는 옹진반도에서 경비 임무를 수행하다가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에 북한군 전면적인 공격을 받았다. 당시 북한군은 제6사단 1연대와 제3경비여단이었다. 이에 제17연대 장병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전투하다가 다음 날인 6월 26일에 육군본부의 명령에 따라 부포항에서 해군 LST에 승선하여 인천으로 철수했다.
제17연대는 대전으로 이동하여 육본 경비 임무를 수행하다가 6월 30일 오산과 평택 사이의 갈곶리로 이동하여 스미스 특수임무부대의 동측방에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북한군 제105전차 및 제4보병사단은 7월 5일 미 스미스 특수임무부대를 죽미령에서 유린하면서 통과했고, 이영생 일병이 소속된 제17연대는 갈곶리 방어진지에서 철수하여 보은-상주로 이동하여 국군 제1사단에 합류했다. 이후 연대는 7월 중순에는 화령장전투에서 북한군 제15사단 예하 1개 연대를 궤멸시키는 대전과를 획득했고, 7월 말에는 낙동강방어선으로 이동한 후 육군 예비가 되었다.
당시 북한군 제12사단의 일부 병력이 포항 북방의 소티재에서 포항으로 진입할 태세를 보이고, 1개 연대는 도음산∼236고지∼227고지∼경주로 연결된 능선 축선을 지향하여 안강-양동 부근까지 진출하는 등 기계지구의 전황이 급변했다. 이에 이영생 일병이 소속된 제17연대는 상급부대 명에 의거 8월 11일 아침 안강에 투입되었다. 이곳에서 포항지구전투사령부의 지시를 받기로 되어 있었으나, 적 상황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교신도 어려워 지시를 받을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해병대가 방어 중인 양동 일대가 가장 위급하다고 판단하고, 양동 일대의 적을 우선 격퇴한다는 작전을 수립했다. 이날 밤 10시를 기해 양동 일대를 공격하여 12일 아침에는 최종 목표인 145고지와 236고지를 탈환했다. 이후 연대는 방어진지를 편성하여 적의 공격에 대비하고자 했는데, 8월 15일에 야간에 적의 공격을 받고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이날 전투에서 그는 선두에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영생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21판-5면-101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16-ㅌ-078)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