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영생(李永生)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병
- 군번 : 5104543
- 전몰일자 : 19500901
공훈사항
이영생 이병은 경상북도 대구시 삼성동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공격을 저지하던 1950년 8월 15일, 제19연대로 현지 입대하여 바로 전투에 투입되었다.
이영생 이병이 전투에 투입된 첫날인 8월 15일, 제6사단은 의흥 남쪽의 매봉산과 산운동 일대에 방어진지를 편성하여 북한군의 공격을 저지하고 있었다. 그가 부대로 가기 전, 제6사단은 7월 12일에 조령과 이화령을 포함한 문경-점촌-함창 축선에서 북한군 제1, 제13사단을 맞아 7월 31일까지 축차적인 지연전을 실시했다. 그리고 7월 31일 야간과 8월 1일 새벽에 낙동강을 건너 용기동 북쪽 2km 지점 양곡동 일대의 능선에 배치되었다. 이곳에서 적의 공격을 몇 번은 격퇴했으나, 8월 6일에 진지에서 후퇴하여 선돌주막 남쪽의 236고지로 철수했다.
제19연대는 8월 8일 오전 11시경에 2개 대대 규모의 적이 선돌주막 부근까지 진출할 때에 강렬한 저항으로 격퇴하고, 8월 9일 새벽 3시경에 236고지에서 철수하여 조동과 외곡동 일대를 점령했다. 이곳에서 쌍방 간에는 매일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8월 13일에 군위, 의흥을 거쳐 매봉산과 산운동 일대로 철수했다.
북한군 제1사단은 8월 15일부터 전차로 증강된 보전협동으로 맹렬히 공격했고, 이영생 이병이 소속된 제19연대는 강력히 저항하여 적의 공격을 격퇴했다. 그리고 8월 21일 야간에 민부대와 진지를 교대한 후 사단 예비가 되었다. 그러던 중 연대는 8월 25일에 사단 명령에 의거 공세적인 행동으로 적의 측방을 공격하여 의흥 북쪽의 수북동 고지까지 진출했으나, 이 시기에 북한군이 조림산 북쪽의 고지를 무혈점령하여 신녕이 위기에 처했다. 이에 제19연대는 8월 26일에 신속히 신녕지역으로 투입되었다. 그리고 제19연대는 8월 28일에 조림산 탈환을 위해 공격했고, 이후 8월 30일까지 계속 공격했으나 적의 완강한 저항으로 탈환하는 데 실패했다. 반면 북한군은 9월 1일 야간에 전차 2대를 앞세운 보전협동부대로 연대를 공격했다. 이날 전투에서 그는 선두에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영생 이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유해(31묘역-판-24602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39-ㅁ-094)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