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영서(李永西)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60767
- 전몰일자 : 19501230
공훈사항
이영서 일병은 경상북도 월성군 서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총공세를 저지하던 1950년 8월 20일, 제주도 모슬포의 육군 제5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8사단 공병대대로 배치되었다. 당시 공병대대는 방어 시에는 장애물을 설치하여 적의 기동을 방해하고, 공격 시에는 적 장애물을 개척하여 공격부대의 진격속도를 증가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이영서 일병이 부대로 배치된 9월 하순, 제8사단은 9월 16일부터 낙동강 선에서부터 시작한 총반격작전에 참가하여 10월 2일에 원주를 탈환했다. 그리고 10월 8일에 초성리 북방에서 38선을 돌파한 후 연천-철원-평강 방향으로 공격하여 10월 15일에 곡산을 점령했다. 그리고 10월 18일에 강동(평양 동북방 35㎞)까지 진격하여 평양을 탈환하기 위한 준비를 서두르고 있었으나, 군단장 명에 의해 진격 방향을 북쪽으로 변경하여 10월 23일에 덕천을 점령했다.
유엔군은 1950년 10월 24일에 1차 총공세(일명 추수감사절 공세)를 시작했다. 당시 제8사단은 희천을 점령한 후 강계 방향으로 진격했다. 이때 선두부대인 제10연대가 10월 26일에 제일 먼저 희천에 도착했을 때, 군단으로부터 공격중지 명령이 하달되었다. 중공군의 기습공격으로 후방이 차단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사단 장병들은 중공군의 차단선을 돌파하며 험준한 산길을 따라 철수했다. 이후 11월 1일에 청천강을 건너 원리에서 집결한 후 덕천으로 이동하여 비호산을 방어하고 있던 제7사단 동측을 방호하게 되었다.
유엔군이 1950년 11월 24일에 2차 총공세(일명 크리스마스 공세)를 벌일 당시, 제8사단은 묘향산 동측방의 영원과 맹산 지역에서 미 제8군의 우익을 담당했다. 이곳에서 중공군의 공격을 저지하기 위해 11월 23일부터 27일까지 5일간 치열한 전투를 치렀다. 이후 사단은 전투력의 열세로 병력을 분산하여 험준한 산길로 철수하여 북창과 가창으로 집결했다. 이곳에서 4일간 부대정비를 실시한 후 12월 11일에 연천으로 이동했다가 국군 제3군단에 배속되어 화천저수지 남쪽의 경운산-추전리를 잇는 방어선을 점령했다. 당시 이영서 일병이 소속된 공병중대는 12월 30일에 방어진지 보강을 위해 전방에 장애물을 설치하던 중 적 침투부대의 공격을 받았으나 격퇴했다. 이날 전투에서 그는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영서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 명비(060-ㅋ-060)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