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영석(李榮錫)
- 군별 : 경찰
- 계급 : 경사
- 군번 :
- 전몰일자 : 19510713
공훈사항
이영석 경사는 1928년 8월 5일 경남 함양군 서상면에서 출생했다. (경찰 입문 일자 미상). 그는 전북도경 장수경찰서 소속으로 재직 중 장수군 계내면에서 전사했다.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이 전 전선에 걸쳐 기습남침을 감행하자 치안국은 전시 비상경비총사령부 체제로 전환했다. 6월 28일 서울이 함락되고 군경부대가 남쪽으로 후퇴함에 따라 장수경찰은 장수-진안, 장수-무주, 장수-임실, 장수-함양을 잇는 주요 도로 통제, 장수군의 주요 시설 경비, 피난민 이동 통제·구호 임무를 수행했다.
6월 28일, 한강방어선을 돌파한 북한군이 계속 남진하자 전북경찰국은 전남경찰국에서 지원한 병력을 혼합하여 전북 전투경찰대(이 경사 포함)를 편성했다.
7월 18일, 전북 전투경찰대는 강경에서 남진하는 북한군 2개 대대 병력을 맞아 15시간에 걸친 공방전 끝에 적 35명을 사살하고, 충남경찰부대와 합동작전으로 적에게 빼앗겼던 강경경찰서를 수복하였다.
7월 19일, 연대규모의 북한군이 강경을 재침하자 350명의 전북 전투경찰대는 병력의 열세로 인하여 강경에서 후퇴했다. 적은 계속해서 전북 전투경찰대의 저지선을 돌파하고 이리에 육박했다. 이리 전방에서 전북 전투경찰대가 사력을 다하여 적을 저지하였으나 중과부적으로 인하여 방어진지에서 철수하여 7월 20일 아침에 부대를 재정비했다. 재정비 후 경찰병력 100명과 해병대원 30명, 그리고 전남북 경찰병력 400명(이 경사 포함)이 반격작전을 시도했다. 그러나 강력한 화력을 동반한 적의 공격으로 인하여 반격에 실패하고 지연전을 펼치며 축차적으로 후방으로 이동하였다.
7월 23일, 북한군의 선두부대가 전주를 돌파하여 정읍과 남원 방면으로 남진했다. 전북 전투경찰대는 축차적으로 지연전을 펼치며 후방으로 이동하여 7월 27일 함안에 도달했다. 이곳에서 전북 전투경찰대는 낙동강 방어작전에 참여했다.
1950년 9월 인천상륙작전이 성공적으로 수행되고 국군·유엔군의 반격작전이 개시되자 각 도(道) 경찰도 경찰관서 수복작전에 나섰다. 장수경찰은 10월 초 장수경찰서를 수복하고 잔적소탕과 치안유지 활동을 강화했다.
치안국 비상경비총사령부는 공비섬멸 작전기간(1차 1951.3.10~4.10, 2차 1951.4.15~5.5, 3차 1951.7.15.~8.15.)을 설정하여 전국적으로 공비섬멸작전을 시행토록 했다. 이 경사는 제1차-제2차 공비섬멸작전에 참가하여 많은 공을 세웠다.
1951년 7월 13일, 장수군 계내면에 공비들이 출현하자 장수경찰이 출동, 이 경사는 휘하의 병력을 지휘하여 공비들을 소탕하던 중 적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영석 경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97-ㄹ-080)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