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영석(이영석)

  • 군별 : 육군
  • 계급 : 중위
  • 군번 : 60788
  • 전몰일자 : 19530718

공훈사항

이영석 중위(출생일자, 출생지 미상)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분연히 일어섰다. 그는 장교가 되고자 1950년 11월 20일 육군보병학교에 입교하여 소정의 교육훈련을 받고 육군 소위로 임관했다. 이 중위는 제15사단이 창설되면서 사단 수색중대에 배치되었다.
한·미 양국은 미군(or 유엔군) 재보충의 어려움과 휴전 후의 한국 국방을 고려하여 1952년 초부터 육군을 10개 사단에서 20개 사단으로 증편하는 계획을 추진했다. 이에 따라 4월 28일 3개의 경장비 교육보충연대(제37·38·39연대)가 창설되었고, 6월 13일에 같은 성격의 3개 연대(제50·51·52연대)가 추가로 창설되었다. 10월 30일에 육군 2개 사단 증편계획이 확정되자, 육군본부는 11월 8일부로 위의 6개 경보병연대를 중장비 연대로 개편함과 아울러 6개 경보병연대(제53~제59교육보충연대)를 추가 창설했다. 그리고 같은 날 강원도 양양에서 제12, 제15사단을 창설했다. 이때 제15사단은 제57·58·59교육보충연대를 잠정 배속하여 창설되었다가, 11월 14일부로 이들 연대를 배속 해제하고, 중장비 연대로 개편 완료된 제38·39·50연대를 건제부대로 편성했다.
사단은 1952년 12월 10일부터 1953년 1월 10일까지 부대교육훈련(UTC교육)을 하고, 1월 12일부로 제1군단에 배속된 뒤 강원도 고성군 간성으로 이동하여 부대종합훈련을 완료하고 1월 30일 제5사단이 수행하던 동해안 지구 방어임무를 인수했다. 사단은 남강 남안의 554고지-351고지-동해안에 이르는 16km의 정면을 맡았다. 사단은 진지교대 이후 큰 전투가 없는 가운데 진지를 보강하면서 위력수색과 매복작전 등을 지속했다.
북한군은 6월 본 공세에 앞서 351고지 일대에 전력을 집중했다. 사단 전방의 북한군 제7군단 예하 제7사단이 6월 2일부터 6월 3일까지 집중 공격을 감행하여 351고지를 점령했다. 이에 사단은 6월 3일부터 6월 6일까지 수차례 역습을 실시하였으나 중과부적으로 351고지를 탈환하지 못하고 일단 공격을 중단하였다가 6월 15일 재 역습을 실시했다. 이 중위는 수색소대장으로서 역습의 전 과정에 참여하였고, 사단장이 작전목표를 351고지 탈환이 아닌 339고지 방어에 둠에 따라 7월 17일부터 339고지 방어작전을 수행하던 중 7월 18일 적탄에 맞아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영석 중위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122-ㅁ-008)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