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영석(李永錫)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병
  • 군번 : 0168893
  • 전몰일자 : 19510216

공훈사항

이영석 이병은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흑석동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압록강까지 진격했다가 다시 38선으로 철수했던 1950년 12월 11일, 경북 대구의 육군 제1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6사단 제19연대에 배치되었다.
이영석 이병이 부대로 전입했을 때인 1951년 1월 중순, 제6사단은 장호원 부근의 적산리 일대에 방어진지를 편성하고 있었다. 그가 전입하기 전, 사단은 북진작전으로 10월 말에 희천까지 진격했다가 두 차례에 걸친 중공군의 대규모 기습공격으로 큰 타격을 입고 12월 11일경에 38선으로 철수했다. 이후 사단 장병들은 곧 다가 올 중공군의 공격에 대비해 방어준비를 강화하고 있었다. 예상대로 1950년 12월 31일 야간에 중공군은 3차 공세(일명 신정 공세)를 감행하여 서울을 점령하고자 했다.
사단은 중공군의 3차 공세에 대적하여 최대한 타격을 가했으나, 1951년 1월 1일 새벽 적들이 사단의 후방지역으로 침투하여 동두천 부근을 공격하면서 전세는 급격히 악화되었고, 사단은 포위당할 것을 우려하여 이날 야간에 창동으로 철수했다. 이후 국군과 유엔군이 서울을 포기함으로써 사단은 1월 3일에 경기도 광주의 한강 남안에 진지를 점령했다가 1월 6일에 장호원 부근의 적산리로 이동했다. 이후 유엔군 차원에서 1월 15일부터 울프하운드 및 썬드볼트작전을 수행하는 동안 제6사단은 부대정비와 후방지역 수색작전 활동을 실시했다.
이영석 이병이 소속된 제19연대는 2월 12일 시작된 중공군 2월 공세 시에 문막 북쪽의 판대리 일대의 방어진지에서 돌파구 확장을 방지하기 위해 싸웠다. 그는 2월 16일까지 계속된 전투에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영석 이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130433육)을 추서했다. 그의 위패(33판-41면-22570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43-ㄱ-040)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