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영석(李永碩)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125696
- 전몰일자 : 19510108
공훈사항
이영석 일병은 1928년 5월 28일에 경상북도 성주군 반남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압록강을 향한 1차 총공세(일명 추수감사절 공세)를 했으나 중공군의 기습공격으로 청천강 이남으로 철수하여 차후 공세를 준비하던 1950년 11월 11일, 경북 대구의 육군 제1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8사단 공병대대로 배치되었다. 당시 공병대대는 방어 시에는 장애물을 설치하여 적의 기동을 방해하고, 공격 시에는 적 장애물을 개척하여 공격부대의 진격속도를 증가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이영석 일병이 부대로 배치된 12월 중순, 제8사단은 국군 제3군단에 배속되어 화천저수지 남쪽의 경운산-추전리 선에 방어진지를 편성하고 있었다. 그가 부대로 배치되기 전, 사단은 평북 희천까지 진격했다. 당시 국군과 유엔군은 압록강을 향해 두 차례에 걸쳐 총공세를 펼쳤으나, 그때마다 중공군의 기습공격을 받고 후방이 차단되어 큰 피해를 받고 38선 일대로 철수했다. 당시 사단은 삼등-율리-수안-신계-시변리를 거쳐 12월 5일 토산에 집결했다. 이후 사단은 연천으로 철수한 후 원주로 이동하여 국군 제3군단에 배속되어 현 방어진지로 이동했다. 사단 장병들은 추후 예상되는 중공군의 공세에 대비하여 방어진지 보강에 집중했다. 그가 소속된 공병중대는 장애물 설치로 보병부대의 방어진지 보강을 지원했다.
예측대로 공산군은 1950년 12월 31일에 주공을 철원-의정부-서울 축선으로 지향시키고, 화천-춘천-원주 축선에 조공을 지향시켜, 38선을 돌파하기 위한 3차 공세(일명 신정공세)를 개시하였다. 이에 국군과 유엔군은 전방으로부터의 압력과 측후방의 위협으로 38선에서 1951년 1월 1일 야간에 방어진지에서 철수했다. 당시 국군 제8사단은 접적이 경미하였으나, 좌우인접 사단이 철수하면서 적중에 고립될 상황에 직면하여 홍천으로 철수하여 방어진지를 편성하였다. 이영석 일병이 소속된 공병중대는 새로 점령한 방어진지의 보강을 위해 장애물을 설치하던 중, 1월 8일에 적 침투부대의 공격을 받고 치열한 전투로 격퇴했다. 이날 전투에서 그는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영석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33판-41면-22570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60-ㅁ-076)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