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영석(李永錫)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9362597
  • 전몰일자 : 19530716

공훈사항

이영석 하사는 1929년 12월 30일 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일어섰다. 이 하사는 1952년 10월 23일 제주도 모슬포에 있는 제1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9사단 제30연대에 배치되었다.
이 하사가 부대에 배치될 무렵 국군과 유엔군은 캔자스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과 그 북방 일대에서 공산군과 공방전을 펼치고 있었다. 그리고 제9사단은 11월 25일 제2사단 진지를 인수하여 김화지구의 저격능선 일대를 방어하고 있었다.
유엔군과 공산군이 1951년 11월 27일 현 전선을 잠정 군사분계선으로 하기로 합의함에 따라 전선은 소강상태로 접어들었고, 큰 전투 없이 소규모 전초진지 전투와 전투정찰 위주의 탐색전이 지속되었다. 연대는 1953년 5월 초순까지 저격능선과 상감령 일대에서 진지보강을 하면서 소규모 전초쟁탈전과 포로획득전, 수색·매복작전을 지속 전개했다. 사단은 1953년 5월 12일 미 제3사단으로부터 김화읍 오성산에서 서남서쪽으로 뻗어내린 북진능선의 진지를 인수하여 제30연대에 방어임무를 부여했다.
연대는 1953년 들어 포격으로 인한 피해를 줄이고자 주저항선과 전초기지의 교통호를 물결형으로 보강하는 한편, 전 유선망을 교통호 지하에 매설했다. 5월 들어 연대 전방의 중공군의 활동이 두드러지게 활발해지고, 북진능선 정면에 중공군 제70사단 제208연대가 새롭게 배치되는 등 적의 동태가 심상찮아졌다. 이에 연대는 북진능선 전방의 예상되는 적 집결지와 기동로에 대하여 화집점을 구성하고, 진지를 보강하여 적의 공격에 대비했다.
중공군은 휴전협정 체결을 앞두고 유리한 위치를 확보하기 위해 하계공세를 감행했다. 그 제1단계 공세의 일환으로 1953년 5월 16일부터 19일까지 저격능선에 대해 공격을 가했고, 제2단계 공세의 일환으로 6월 11일부터 14일까지 북진능선을 공격했다. 그리고 7월 13일 금성돌출부에 대하여 마지막 대공세(‘7·13공세’)를 감행했다. 연대는 북진능선전투와 계웅산전투에서 수류탄전과 백병전이 난무하는 치열한 전투 끝에 중공군 제70·72사단의 공격을 격퇴하고 동 고지들을 지켜냈다. 이 전투에서 이 하사는 분대원을 독려하며 끝까지 진지를 지키다 7월 16일 적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영석 하사의 혁혁한 전공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138981 육)을 추서하고, 그의 유해(장병1묘역-141판-26289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71-ㅊ-008)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