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김광묵 (金廣黙)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8812049
- 전몰일자 : 1952-10-04
공훈사항
김광묵 하사는 1928년 8월 1일 충청북도 괴산군 청천면에서 태어나 육군에 입대하여 제6사단 제2연대에서 복무하였다.
제6사단은 1948년 6월 14일 충청북도 충주에서 제4여단으로 창설된 후 11월 20일 제6여단으로 개칭되었다가, 강원도 원주에서 1949년 5월 12일 사단으로 승격되었다. 사단은 예하 제2연대와 제7연대를 춘천 북방에 배치하여 38도선 경비임무를 수행하였다. 제6사단은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춘천-홍천지구에서 6월 30일까지 적의 남하를 성공적으로 저지하다가 육군본부의 철수명령에 따라 횡성-충주로 철수하면서 지연전을 전개하여 많은 전과를 올렸다. 특히 사단은 초기전투에 적 2개 사단을 맞이하여 적의 진출을 성공적으로 지연시켜 적의 작전에 큰 차질을 빚게 하였다. 적은 자주포를 포함한 인원 장비의 많은 손실을 입고 사단의 축차적인 저항에 부딪쳐 원주 이천 방면으로의 진출도 늦어졌다.
그후 제6사단은 음성 동락리 및 무극리지구와 경상북도 이화령, 문경지구에서 적에게 결정적인 타격을 가하면서 상주로의 진출을 차단하였으며, 그후 1950년 7월 말 낙동강방어선인 성주 용기동으로 철수하였다. 제6사단은 군위-의성 남쪽을 방어하여 적의 돌파를 성공적으로 저지하였다.
사단은 9월 15일부터 반격작전을 전개하여 충주-횡성-춘천으로 진격, 38도선을 돌파하고 화천-원산-성천-순천-개천-고장을 거쳐 10월 26일에는 초산까지 진격하여 국군의 위용을 떨쳤으나 중공군의 개입으로 퇴로가 차단되어 북창-평양-수안-동두천으로 철수하여 38도선 방어임무를 수행하였다.
사단은 1951년 1월초 중공군의 공세로 안성까지 철수하였다가 여주-가평 방면으로 반격하여 사창리, 용문산, 화천, 백암산 전투를 치른 후 수리봉-재안산간을 방어하였다. 사단은 1952년 3월부터 교암산, 봉화산, 금성천 일대에서 전초진지쟁탈전을 수행하였다.
김광묵 하사는 금성지구전투에 참가하여 임무를 수행하다가 1952년 10월 4일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살신보국정신(殺身保國精神)을 선양하고 후세에 교훈으로 남기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명비(戰死者銘碑) 045-ㅈ-052에 이름을 새겨 추모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