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김광민 (金光敏)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33075
  • 전몰일자 : 1950-12-20

공훈사항

김광민 일병은 서울시 중구 예관에서 태어나 육군에 입대하여 제7사단 제5연대에서 복무하였다.
제7사단은 1949년 6월 20일 제1, 제9, 제19연대를 기간으로 서울시 용산에서 창설된 후 제1연대를 동두천 정면에, 제9연대를 포천 정면에 배치하여 의정부지구 38도선 경비임무를 수행하였다. 사단은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가평지역과 동두천 서남쪽 은현리와 포천 남쪽 송우리 지역에 증원하여 북한군의 남하를 저지하였다. 제1연대는 동두천 부근 보산리까지 추진되어 준비된 진지에서 적 1개 대대를 집중포격을 가하여 대부분 격멸하는 수훈을 세웠다.
사단은 주저항선인 동두천 북쪽 소요산 일대의 진지로 철수하여 남하하는 북한군과 일진일퇴의 치열한 전투를 계속하면서 진지를 사수하고 있었다. 장병들은 적의 보전협동부대를 저지하였으나 서측으로 우회한 적의 위협을 받아 고전을 면치 못하였다.
사단은 그후 한강방어전투, 시흥지구전투를 수행한 후 해체되었다가 동년 7월 10일 전라북도 전주에서 제3, 제9연대로 재창설된 후 7월 14일 민부대로 개칭되었다. 민부대는 전주, 남원, 운봉, 함양 등지에서 적 제6사단의 진출을 지연시킨 후 포항지구전투에 참가하였다.
민부대는 동년 8월 20일 경상북도 대구에서 제3, 제5, 제8연대를 기간으로 사단으로 재창설된 후 의흥지구 방어임무를 수행한 후, 포항전투 및 영천전투에 참가하였다. 10월 1일 이후 반격작전을 개시하여 안동-포천-김화-평강 방면으로 북진, 일부 부대는 강동-평양-구장동 까지 진출하였으나 중공군의 반격으로 개천-순천방면으로 철수하였다.
김광민 일병은 개천-순천 철수작전에 참가하여 임무를 수행하다가 1950년 12월 20일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살신보국정신(殺身保國精神)을 선양하고 후세에 교훈으로 남기기 위해 서울 국립현충원(國立顯忠院)에 위패번호 13-1-040번으로 봉안하였으며, 전쟁기념관 전사자명비(戰死者銘碑) 051-ㄱ-003에 이름을 새겨 추모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