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김광수 (金光洙)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0189495
- 전몰일자 : 1951-09-02
공훈사항
김광수 하사는 평안남도 강서군 양용면에서 태어나 육군에 입대하여 제3사단 제22연대에서 복무하였다.
제3사단은 1947년 12월 1일 경상남도 부산에서 창설된 조선경비대 제3여단이 경상북도 대구에서 1949년 5월 12일 사단으로 승격되었다. 제3사단 예하 제22연대는 경상북도 대구지역에서, 제23연대는 경상남도 진주지역에서 공비토벌작전을 수행하였다. 사단은 지역 내에서 준동하던 공비들을 거의 소탕하는 전공을 세웠으며 주민들의 생활안정에도 크게 이바지하였다.
제3사단은 영남지방에서 공비토벌작전을 수행하던 중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대구에 있던 제22연대와 김포지구로 출동, 제1사단을 증원하여 지연전을 수행하다가 수원-천안-청주-추풍령-대구로 철수하였으며, 진주에 있던 제23연대는 동해안의 울진지역으로 출동하여 적 제5사단의 남하를 저지하다가 평해-영해-영덕-강구로 철수하였다.
그후 사단은 동년 8월 9일부터 9월22일까지 포항지구전투에서 치열한 공방전을 수행하였다. 사단은 포항방어에 중요한 천마산을 놓고 수차례의 쟁탈전을 전개하는 격전을 전개하였으며 한때 포항이 피탈되는 위기에 처하기도 하였지만, 안강 남쪽 형산강 일대에까지 철수하여 간신히 경주로의 적 돌파를 저지하였다. 적이 운제산으로 진출하면서 경주시민들까지 크게 동요하였으나 경찰과 헌병을 동원하여 민심수습과질서유지에도 기여하였다. 사단은 기간동안 유엔 공군기의 지원 하에 옥녀봉, 운제산을 탈환하였으며 연일, 형산강 일대에서 적을 격멸하였다.
사단은 인천상륙작전과 반격을 계기로 38선을 돌파하여 북진하다가 중공군의 공세에 밀려 길주-성진-흥남을 거쳐 12월 12일에는 구룡포와 부산으로 철수한 후 강원도 원주로 이동하였다. 그후 사단은 1951년 2월 이후부터 횡성, 인제, 현리 일대에서 중공군의 공세를 방어하였다.
김광수 하사는 388고지전투에 참가하여 임무를 수행하다가 1951년 9월 2일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살신보국정신(殺身保國精神)을 선양하고 후세에 교훈으로 남기기 위해 서울 국립현충원(國立顯忠院)에 안장번호 14-2327번으로 봉안하였으며, 전쟁기념관 전사자명비(戰死者銘碑) 027-ㄴ-066에 이름을 새겨 추모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