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김상내(한자미상)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0142635
  • 전몰일자 : 1951-01-15

공훈사항

김상내 이등중사는 1925년 12월 1일 경상남도 마산시 성호동 32-3번지에서 출생하여, 1950년 9월 5일 육군에 입대한 후 수도사단에서 복무하였다.
1949년 6월 20일 국본 일반명령 제6호에 의거 기갑연대, 제2연대, 제17연대를 기간으로 서울 용산에서 수도경비사령부가 창설되었다.
1950년 6월 25일 수도경비사령부는 전쟁 발발과 동시에 북한군의 진격을 저지하기 위하여 예하의 제3연대와 제18연대를 의정부지구에 투입하고, 동일부로 제3연대와 제18연대를 제7사단으로 일시 예속전환시켰다. 또한 제8연대는 제6사단에 배속하여 가평지구에 투입하였다. 사령부는 6월 28일부터 7월 4일까지 한강선 방어전투에 참가하여 보병 3개 사단과 전차 1개 여단으로 편성된 북한군의 남하를 성공적으로 저지하였다.
수도경비사령부는 1950년 7월 5일 수도사단으로 개칭함과 동시에 제1연대를 예속시켰다. 사단은 7월 6일 진천지구 전투, 7월 13일 청주 전방 미호천 전투, 14~16일 청주 남쪽 고은리 전투를 수행하고, 7월 17일 보은에 도착하였다. 사단은 다시 철수하여 7월 말에는 낙동강 방어선 형성시 의성 동쪽 길안 일대에서 방어진지를 구축하였다. 사단은 8월 4일 기갑연대를 예속시켜 8월 9일부터 전개된 안강-기계 전투에서 북한군 제12사단 등을 격퇴함으로써 적의 낙동강 방어선 돌파를 저지하였다. 사단은 1950년 8월 25일 해편되었던 기갑연대를 9월 14일 다시 편입시켰다.
수도사단은 9월 16일부터 반격작전으로 전환하여 제3사단과 함께 10월 1일 38선을 돌파하고, 10월 10일 원산, 17일 함흥, 29일 성진을 점령한 후 계속 진격하여 11월 25일 청진을 점령하고 30일에는 부령까지 진격하였다.
그러나 중공군의 개입으로 12월 1일 청진에서 철수한 사단은 12월 17일 흥남항에서 해상으로 철수하여 18일 묵호에 상륙한 후 양양으로 이동하여 제9사단의 양양-서림간 방어선을 인수하였다.
이 시기에 사단은 예하의 제18연대를 12월 15일부로 제3사단으로 예속을 전환시키고, 제3사단의 제26연대를 12월 19일부로 사단 예하로 예속시켰다.
전선조정 지시에 의거 사단은 1951년 1월 10일 송계리-삼척 선으로 철수한 후, 2월 3일 공격을 개시하여 2월 7일 강릉을 점령하였다. 그러나 1951년 2월 11일에 개시된 중공군의 제4차 공세에 전 전선이 밀리게 되자 수도사단은 다시 송계리-삼척 선으로 철수하였다.
김상내 이등중사는 사단이 송계리-삼척 선에서 전투준비를 하고 있던 1951년 1월 15일, 전초지역에서 침투한 적과 교전 중에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살신보국정신(殺身保國精神)을 선양하고 후세에 교훈으로 남기기 위하여 국립현충원(國立顯忠院, 7625)에 봉안하고 영령을 추모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