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김상노(金相魯)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등병
  • 군번 : 5205314
  • 전몰일자 : 1951-01-01

공훈사항

김상노 일등병은 1930년 7월 8일 경상남도 김해군 진영읍에서 출생하여, 1950년 11월 8일 육군에 입대한 후 제1사단에서 복무하였다.
제1사단은 전쟁 발발 전 좌측에 제12연대(서해안-청단-개성-대원리), 우측에 제13연대(문산 서북쪽 대원리-고랑포-적성)를 배치하고, 제11연대를 예비로 하여 38선 경비임무를 수행하였다. 사단은 1950년 6월 25일 북한군 제1사단과 제6사단이 이 지역으로 침입하자, 이를 저지하기 위해 개성, 문산, 봉일천 일대에서 방어작전을 전개하였다. 사단은 임진강과 곡릉천의 천연장애물을 이용하여 적의 진출을 저지했으나 서울이 피탈됨에 따라 퇴로가 차단되어 행주나루에서 한강을 도하하여 철수하였다.
1950년 7월 4일 수원 동북쪽 풍덕천에서 적을 섬멸하고, 조치원-청주-음성-문경을 거쳐 7월 31일 밤 함창 북서쪽에서 적과 접촉을 끊고 8월 1일 상주를 경유하여 낙동강을 도하한 후, 왜관 지역에서 낙동강 방어선을 형성하였다.
사단은 왜관~낙동리 지역 전투(8. 3~12), 다부동 전투(8. 13~28), 가산 지역 전투(8. 31~9. 4), 팔공산 지역 전투(9. 5~9. 14)에서 북한군의 공격을 격퇴함으로써 대구 북방의 낙동강 방어선을 유지하는데 성공하였다.
사단은 낙동강 방어선에서 반격을 개시하여 9월 25일 낙동강을 도하하고, 청주-안성-10월 10일 고랑포를 거쳐 11일 38선을 돌파하고 북진의 길에 나섰다. 10월 19일 선두로 평양에 입성한 사단은 8,000여 명으로 편성된 북한군 혼성부대의 강력한 저항을 격퇴한 후 행정관서와 비행장 등 주요 시설을 조기에 점령함으로써 작전을 효율적으로 이끌었다. 평양을 탈환한 사단은 청천강을 건너 한ㆍ만 국경선의 수풍발전소를 목표로 진격작전을 전개하던 10월 25일 운산 북쪽에서 중공군 제39군과 조우하여 1주일간의 사투로 적에게 심대한 타격을 가하고 영변으로 철수하였다.
11월 24일 박천 일대에서 공격을 개시한 사단은 25일부터 태천에서 중공군과 격전을 치른 후 28일 청천강을 건너 철수하여 11월 30일 숙천 일대에서 방어진지를 구축하였으나, 12월 2일 다시 철수하여 12월 3일에는 평양 북쪽에서 방어진지를 구축하였다.
12월 4일 평양에서 철수한 사단은 사리원-남천(12월 7일)-시변리를 거쳐 고랑포에서 임진강을 건너 12월 11일 동두천 서쪽 신산리에 도착하고, 예하 연대가 38선 방어태세를 갖추었다.
1950년 12월 31일 개시된 중공군의 제3차 공세에 맞서 사단은 격전을 벌였으나, 철수하여 1951년 1월 6일 안성에 도달한 후, 1월 30일부터 반격작전을 전개하여 안양-서울-임진강으로 진출하였다.
김상노 일등병은 1951년 1월 1일, 파주군 적성에서 중공군의 신정공세에 맞서 용감히 싸우다가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유해를 본가에 봉송하고, 살신보국정신(殺身保國精神)을 선양하고 후세에 교훈으로 남기기 위하여 화랑무공훈장을 추서하였으며,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12-ㄱ-089)에 그 이름을 새겨 추모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