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김북금 (한자미상)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등병
  • 군번 : 8805285
  • 전몰일자 : 1952-10-16

공훈사항

김북금 일등병은 1929년 1월 5일 전라남도 강진군 작천면 평기리에서 출생하여, 1952년 3월 10일 육군에 입대한 후 제2사단에서 복무하였다.
제2사단은 1947년 12월 1일 충청남도 대전에서 제2, 제3, 제4연대를 기간으로 창설된 제2여단이 근간이 되었다. 제2여단은 1949년 5월 12일 육본 일반명령 제15호에 의거 제2사단으로 승격되었고, 유승렬 대령이 초대 사단장으로 취임하였다. 사단은 부대창설 이후 1950년 5월 4일까지 예하 제5, 제16, 제19연대가 태백산지구 및 안동지구에서 공비토벌작전을 전개해 많은 전공을 세우고 대전으로 복귀하여, 6ㆍ25전쟁 발발 직전까지 향토방위에 주력하였다.
사단은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남침을 저지하기 위해 26일 새벽 제5연대를 대전에서 의정부 북방 축석령으로, 제16연대를 청주로부터 의정부 금오리로, 제25연대를 온양에서 의정부 남방 백석천으로 투입해 의정부저지선을 구축하였다. 38도선으로부터 후퇴하는 제7사단을 엄호한 후 창동을 경유해 한강방어선으로 철수한 사단은 이후 병력 분산으로 사단이 해체된 7월 24일까지 지연작전을 전개하고, 대구지구 방어사령부로 개칭되었다.
1950년 11월 7일 국본 일반명령 제103호 에 의거 서울에서 재창설된 제2사단은 제17연대를 편입한 데 이어 11월 11일과 13일 제31연대와 제32연대를 편입하였다. 재창설 직후 사단은 포천-평강 지구에서 후방지역 잔적 소탕작전을 실시한 후 12월 18일부터 춘천 지구에서 적의 남진을 저지했으나, 군단 작명에 의거 청평-양평-예천으로 철수하였다.
사단은 제8사단 21연대의 2개 대대를 배속 받아 1951년 1월 20일부터 4월 초까지 일월산과 보현산 일대에서 공비 소탕작전을 실시하고, 미 제9군단으로 배속 변경된 직후 경기 양평으로 이동하여 5월 말까지 백운산 진격작전을 전개하였다. 이어 사단은 6월 1일 김화 근남 일대에서 중공군 제52, 53군 예하 2개 연대와의 치열한 공방전을 시작으로 6월 말까지 375고지 및 734고지 전투를 전개, 중공군 3,000여 명을 사살 및 생포하는 전과를 거두었다. 이후 사단은 김화 일대에서 방어진지를 구축하고 교착된 전선에서의 진지전에 대비하였으며, 10월 13일부터 21일까지 사단은 김일성고지 일대에서 중공군 3개 연대와 치열한 교전을 실시한 끝에 고지를 점령하였다.
1952년 3월 30일 사창리 지역으로 이동한 사단은 10월 14일부터 11월 24일까지 저격능선 전투를 실시하였다. 이 전투는 김화 북방의 저격능선을 탈취하기 위한 공격전투로서 사단은 저격능선 일대에 배치되어 있던 중공군 제15군을 공격, 목표를 점령한 후 42일 동안 고지를 확보하는 투지를 보여주었다. 사단은 20여 회의 공방전을 전개한 끝에 15,000여 명의 적을 사살 및 생포하는 대전과를 거두었다.
김북금 일등병은 저격능선 전투에 참가하여 용감하게 싸우다가, 1952년 10월 16일 적의 흉탄을 맞고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살신보국정신(殺身保國精神)을 선양하고 후세에 교훈으로 남기기 위하여 국립현충원(國立顯忠院, 23-23-13300)에 봉안하고 영령을 추모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