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김분구 (한자미상)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등병
  • 군번 : 9708191
  • 전몰일자 : 1950-09-22

공훈사항


김분구 일등병은 충청남도 보령군 주포면 보령리에서 출생하여, 1950년 8월 25일 육군에 입대한 후 제6사단에서 복무하였다.
1948년 4월 29일 수색에서 제7, 8, 10연대를 기간으로 제4여단이 창설된 후, 11월 20일 청주에서 제6여단으로 개편되었다. 그 후 1949년 5월 12일 육본 일반명령 제15호에 의거 제6사단으로 승격되었다.
원주에 사령부를 둔 제6사단은 제7연대와 제2연대를 춘천과 홍천 동북지역에 각각 배치해 38선 경비임무를 수행하였고, 예비인 제19연대는 원주에 집결보유하고 있었다.
사단은 1950년 6ㆍ25전쟁이 발발하자 예비인 제19연대를 즉각 춘천으로 투입하여 춘천과 홍천 지구에서 6월 30일까지 북한군 제2사단과 제12사단의 남하를 성공적으로 저지하였고, 육군본부의 명령에 따라 횡성-충주로 철수하면서 지연전을 전개하여 많은 전과를 올렸다. 사단의 축차적인 저항에 부딪친 북한군은 자주포를 포함한 많은 인원 및 장비의 손실을 입고 춘천-홍천 축선으로의 진출이 지연되어 수도권을 포위하기 위해 우회기동하려던 작전계획에 큰 차질을 초래하였다.
국군의 한강 방어선이 붕괴된 후인 1950년 7월 5일부터 10일까지 사단은 음성 지구에서 적의 선두부대인 제15사단 제48연대를 궤멸시키는 대전과를 거둠으로써 제7연대 전 장병이 일 급 특진하는 영예를 획득하였다. 이어 이화령과 문경 지구에서는 적 제1사단에 결정적인 타격을 가해 상주로의 진출을 저지하였고, 7월 18일부터 26일까지 함창 선에서 적 제1사단과 옥녀봉 및 조봉지구 전투를 실시하는 등 지연전을 전개하면서 낙동강방어선으로 철수하였다. 사단은 의성-군위-의흥 선에서 약 1개월에 걸친 공방전을 벌인 후, 1950년 8월 30일 영천 북방의 신녕지구에서 마지막 공세를 통해 아군 제8사단의 방어선을 돌파해 영천 동측방으로 진출하려던 적 제8사단의 공격을 성공적으로 방어하였다.
1950년 9월 16일부터 반격작전으로 전환한 사단은 충주-원주를 거쳐 10월 3일 춘천을 탈환하고 38선을 돌파하였다. 사단은 화천-원산을 거쳐 19일 성천을 점령한 후 20일 순천에서 미 공수부대와 연결하였다. 사단은 계속 북진하여 21일 개천, 22일 영변과 구장동, 23일 희천, 24일 온정리를 점령하고, 고장을 거쳐 한ㆍ만 국경으로 진격하여 10월 26일 7연대가 초산을 점령한 후 압록강변에서 역사적인 태극기 게양식을 거행하였다.
김분구 일등병은 사단이 반격작전으로 전환하여 신녕 북방 조림산 일대에 배치된 북한군을 공격하고 있던 1950년 9월 22일, 전투에 참가하여 용감히 싸우다가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살신보국정신(殺身保國精神)을 선양하고 후세에 교훈으로 남기기 위하여 국립현충원(國立顯忠院, 39-7-224)에 봉안하고 영령을 추모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