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김붕규 (金鵬圭)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등병
  • 군번 : 0732246
  • 전몰일자 : 1952-01-08

공훈사항

김붕규 일등병은 1929년 3월 14일 경기도 평택군 오성면에서 출생하여, 1951년 6월 1일 육군에 입대한 후 제1사단 12연대에서 복무하였다.
1947년 12월 1일 남조선 과도정부 통위부 일반명령 제69호에 의거 태릉 주둔 제1연대, 청주 주둔 제7연대, 춘천 주둔 제8연대를 기간으로 서울 남산동에서 제1여단이 창설되었다. 제1여단은 1949년 5월 12일 경기도 고양군 수색에서 사단으로 승격하면서 제11, 제12, 제13연대를 예속시켜 개성ㆍ문산 지구의 38선 경비임무를 수행하였다.
사단은 1950년 6월 25일 북한군 제1사단과 제6사단이 이 지역으로 침입하자, 이를 저지하기 위해 개성, 문산, 봉일천 일대에서 방어작전을 전개하였다. 사단은 임진강과 곡릉천의 천연장애물을 이용하여 적의 진출을 저지했으나 서울이 피탈됨에 따라 퇴로가 차단되어 행주나루에서 한강을 도하하여 철수하였다.
1950년 7월 4일 수원 동북쪽 풍덕천에서 적을 섬멸하고, 조치원-청주-음성-문경을 거쳐 7월 31일 밤 함창 북서쪽에서 적과 접촉을 끊고 8월 1일 상주를 경유 낙동강을 도하하여 왜관 지역에서 낙동강 방어선을 형성하였다.
사단은 왜관~낙동리 지역 전투(8. 3~12), 다부동전투(8. 13~28), 가산 지역 전투(8. 31~9. 4), 팔공산 지역 전투(9. 5~9. 14)에서 북한군의 공격을 격퇴함으로써 대구 북방의 낙동강방어선을 유지하는데 성공하였다.
사단은 낙동강방어선에서 반격을 개시하여 9월 25일 낙동강을 도하하고, 청주-안성-10월 10일 고랑포를 거쳐 11일 38선을 돌파하고 북진의 길에 나섰다. 10월 19일 선두로 평양에 입성한 사단은 8,000여 명으로 편성된 북한군 혼성부대의 강력한 저항을 격퇴한 후 행정관서와 비행장 등 주요 시설을 조기에 점령함으로써 작전을 효율적으로 이끌었다. 평양을 탈환한 사단은 청천강을 건너 한ㆍ만 국경선의 수풍발전소를 목표로 진격작전을 전개하던 10월 25일 운산 북쪽에서 중공군 제39군과 조우하여 1주일간의 사투로 적에게 심대한 타격을 가하고 영변으로 철수하였다.
사단은 태천-평양-고랑포를 경유하여 1951년 1월 6일 안성에 도달한 후, 1월 30일부터 반격작전을 전개하여 안양-서울-임진강으로 진출하였다. 그러나 중공군의 제5차공세기인 4월 20일 중공군 제63군 예하 3개 사단이 기습공격을 가해오자 사단은 서울 북방의 봉일천 일대에서 4월 30일까지 치열한 전투를 전개하였다. 사단은 5월 20일 공격작전을 전개하여 6월 24일 임진강 선까지 진격한 후 1952년 3월 말까지 방어작전을 전개하였다.
김붕규 일등병은 사단이 임진강 선에서 방어작전을 전개하고 있던 1952년 1월 8일, 전초지역에서 벌어진 적과의 조우전에서 용감히 싸우다가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살신보국정신(殺身保國精神)을 선양하고 후세에 교훈으로 남기기 위하여 국립현충원(國立顯忠院, 26-5-251)에 봉안하고,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14-ㄷ-033)에 그 이름을 새겨 추모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