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김비관 (한자미상)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0765493
  • 전몰일자 : 1952-06-20

공훈사항

김비관 이등중사는 강원도에서 출생하여(생년월일 미상), 육군에 입대한 후(입대일자 미상) 제9사단에서 복무하였다.
제9사단은 1950년 10월 25일 국본 일반명령 제92호에 의거 창설되어 서울에 사령부를 두고, 예하에 대전에서 제28연대를, 공주에서 제29연대를, 청주에서 제30연대를 각각 창설하였다.
사단은 10월 30일 제3군단에 배속되어 대전으로 이동하였고, 11월 22일 사단사령부를 대구로 옮겼다. 11월 23일 대전에 대둔산지구 전투사령부를 설치하고 20여 일에 걸쳐 공비토벌작전을 실시하였다. 사단은 제28연대를 전북 대둔산 지역 및 충남지구에, 제29연대를 경북 김천 및 왜관지구에, 그리고 제30연대를 경북 영주 및 문경지구에 주둔시켜 산악지역으로 도주하여 후방을 교란하던 북한군 패잔병을 토벌하여 사살 2,100여 명과 포로 및 귀순 260여 명, 각종무기 630여 점을 노획하는 대전과를 거두었다.
사단은 토벌작전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하고, 원주-강릉을 거쳐 12월 20일 평창으로 이동하여 서림리-현리-부평리 간의 38선을 방어하는 한편 영동지구 일대에서 북한군 제10사단과 치열한 교전 끝에 격퇴하였다.
사단은 중공군의 신정공세로 인하여 1951년 1월 6일 춘양으로 철수한 후, 제1군단에서 제3군단으로 배속이 전환되어 하진부리로 진격했으나 중공군의 제4차공세로 정선-창리선에서 방어임무를 수행하였다.
사단은 1951년 3월 6일 다시 제1군단으로 배속이 전환되어 송계리 지역에 침투한 북한군에 대한 소탕작전을 실시하고 강릉-진부리-창촌리로 이동하였다. 그러나 다시 제3군단으로 배속이 전환된 사단은 인제 남방 가로리-가리봉 간을 방어하던 중 5월 6일부터 매봉산 공격전을 실시하였고, 5월 16일부터 21일까지 현리지구에서 중공군 2개 군 및 북한군 3개 사단과 치열한 전투를 실시하고 하진부리로 철수하였다.
미 제1군단으로 배속이 전환되어 포천으로 이동한 사단은 6월 5일부터 보개산과 고대산에서 치열한 교전 끝에 점령하고 철의 삼각지대로 진출하였다. 이어 6월 20일부터 8월 4일까지 김화 동북방의 계웅산을 확보하기 위한 공방전을 펼쳐 1,100여 명의 적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리며 점령에 성공한 후, 계속되는 중공군의 역습을 격퇴하였다. 10월 17일 철원으로 이동한 사단은 1952년 9월까지 부대정비를 실시하는 한편 고지쟁탈전을 전개하여 많은 전과를 거두었다.
김비관 이등중사는 1952년 6월 20일 김화 동북방의 계웅산 공격작전에 참가하여 용전분투하다가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살신보국정신(殺身保國精神)을 선양하고 후세에 교훈으로 남기기 위하여 국립현충원(國立顯忠院, 23-5-2070)에 봉안하고 영령을 추모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