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김사 (金司)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등병
  • 군번 : 0328894
  • 전몰일자 : 1950-09-22

공훈사항

김사 일등병은 경상남도 부산시 대청동에서 출생하여(생년월일 미상), 육군에 입대한 후 제3사단 23연대에서 복무하였다.
1947년 12월 1일 부산에서 제5, 6, 9연대를 기간으로 제3여단이 창설되었다. 제3여단은 1949년 5월 12일 육일명 제15호에 의거 2개 연대 편성으로 대구에서 제3사단으로 승격되었고, 예하의 제22연대와 제23연대를 대구와 진주에 배치하여 영남 지역의 공비소탕작전을 전개하였다.
제22연대는 1950년 6월 25일 전쟁 발발 직후 제1사단에 대한 전투지원 임무를 부여받고 대구에서 서울로 이동하여 3대대가 25일 오후 김포 지구에, 연대(-)가 26일 오후 봉일천에 투입되어 지연전을 전개하였다. 이어 안양으로 철수한 제22연대는 혼성 제3사단에 편입되어 수원방어작전에 임한 후, 7월 4일부터 축차적인 철수를 단행하여 천안-청주-추풍령을 경유하여 7월 23일 대구에 도착하였다.
진주의 제23연대는 6월 29일 동해안의 울진으로 출동하여 북한군 제5사단의 남하를 저지한 후, 평해-영해-영덕으로 철수하여 7월 19일부터 2주일 동안 영덕 일대에서 공방전을 전개하였다. 제23연대는 7월 26일에 합류한 제22연대와 함께 북한군 제5사단의 침공을 저지ㆍ지연시킴으로써 아군의 낙동강방어선 형성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사단은 8월 9일부터 9월 22일까지 포항지구에서 해안을 따라 남진하여 아군의 방어선을 돌파하려는 적을 맞아 치열한 공방전을 전개하였다. 8월 18일 제26연대를 예속받은 사단은 포항 방어에 중요한 천마산을 놓고 수차례의 쟁탈전을 전개했으며, 한 때 포항이 피탈되는 위기에 처했지만 안강 남쪽 형산강 일대까지 철수하여 경주로 진입하려는 적을 저지하였다.
1950년 9월 19일 형산강 도하작전을 실시한 사단은 9월 22일 반격으로 전환하여 영덕-삼척-강릉으로 진격한 후, 10월 1일 38선을 최초로 돌파한 뒤 북한군 제12사단과 경비여단 등을 격퇴하고 11일 원산을 탈환하여 적의 퇴로를 차단하고 영흥만을 장악하는 전과를 올렸다.
김사 일등병은 사단이 반격으로 전환하여 포항 북쪽의 흥해를 점령하던 1950년 9월 22일, 반격작전에 참가하여 용감히 싸우다가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살신보국정신(殺身保國精神)을 선양하고 후세에 교훈으로 남기기 위하여 국립현충원(國立顯忠院, 11-2-115)에 봉안하고,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25-ㅎ-007)에 그 이름을 새겨 추모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