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김상대(金相大)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9303206
  • 전몰일자 : 1951-12-11

공훈사항

김상대 하사는 1932년 10월 30일 경상북도 영일군 대송면에서 출생하여, 1950년 9월 5일 육군에 입대한 후 수도사단 26연대에서 복무하였다.
1950년 6월 25일 수도경비사령부는 전쟁 발발과 동시에 북한군의 진격을 저지하기 위하여 예하의 제3연대와 제18연대를 의정부지구에 투입하고, 동일부로 제3연대와 제18연대를 제7사단으로 일시 예속전환시켰다. 또한 제8연대는 제6사단에 배속하여 가평지구에 투입하였다. 사령부는 6월 28일부터 7월 4일까지 한강선 방어전투에 참가하여 북한군의 남하를 성공적으로 저지하였다.
수도경비사령부는 7월 5일 수도사단으로 개칭함과 동시에 제1연대를 예속시켰다. 사단은 진천지구 전투, 청주 전방 미호천 전투, 청주 남쪽 고은리 전투를 수행하고, 7월 17일 보은에 도착하였다. 사단은 다시 철수하여 7월 말에는 낙동강 방어선 형성시 의성 동쪽 길안 일대에서 방어진지를 구축하였다. 사단은 8월 4일 기갑연대를 예속시켜 8월 9일부터 전개된 안강-기계 전투에서 북한군 제12사단 등을 격퇴하여 적의 낙동강 방어선 돌파를 저지하였다. 사단은 8월 25일 해편되었던 기갑연대를 9월 14일 다시 편입시켰다. 사단은 9월 16일부터 반격작전으로 전환하여 제3사단과 함께 10월 1일 38선을 돌파하고, 10월 10일 원산, 17일 함흥, 29일 성진을 점령한 후 계속 진격하여 30일에는 부령까지 진격하였다.
그러나 중공군의 개입으로 12월 1일 청진에서 철수한 사단은 12월 17일 흥남항에서 해상으로 철수하여 18일 묵호에 상륙한 후 양양으로 이동하여 제9사단의 양양-서림간 방어선을 인수하였다. 이 시기에 사단은 예하의 제18연대를 12월 15일부로 제3사단으로 예속을 전환시키고, 제3사단의 제26연대를 12월 19일부로 사단 예하로 예속시켰다.
전선조정 지시에 의거 사단은 1951년 1월 10일 송계리-삼척 선으로 철수한 후, 2월 3일 공격을 개시하여 2월 7일 강릉을 점령하였다. 그러나 1951년 2월 11일에 개시된 중공군의 제4차 공세에 전 전선이 밀리게 되자 수도사단은 다시 송계리-삼척 선으로 철수하였다. 이어 3월 25일부터 27일까지 양양 전투를 수행한 사단은 5월 7일부터 13일까지 설악산지구 전투와 5월 18일부터 25일까지 대관령 방어작전 등으로 북한군의 춘계공세를 저지하고 반격으로 전환하였다.
사단은 1951년 6월 3일부터 12일까지 향로봉지구 전투를 실시하여 북한군 제13사단을 격퇴하고 940고지를 점령하였다. 또한 8월 18일부터 23일까지 미 제8군의 작전에 참가하여 서화리 동북방의 924고지를 점령한 사단은 10월 12일부터 15일까지 북한군 제19사단으로부터 월비산을 탈취하는 전과를 거두고 11월 26일 여수로 이동하여 호남지구에서 공비 소탕작전을 전개하였다. 사단은 호남지구 공비 소탕작전을 실시하고, 1952년 3월 18일 화천으로 이동하였다.
김상대 하사는 1951년 12월 11일, 호남지구 공비 소탕작전에 참가하여 용감히 싸우다가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살신보국정신(殺身保國精神)을 선양하고 후세에 교훈으로 남기기 위하여 화랑무공훈장을 추서하였으며, 국립현충원(國立顯忠院, 26088)에 봉안하고,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05-ㅍ-082)에 그 이름을 새겨 추모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