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김사득 (金思得)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등병
  • 군번 : 0608056
  • 전몰일자 : 1951-07-11

공훈사항

김사득 일등병은 1927년 2월 23일 경기도 용인군 원삼면 사암리 349번지에서 출생하여, 1951년 4월 12일 육군에 입대한 후 제3사단에서 복무하였다.
제3사단 예하 22연대는 1950년 6월 25일 전쟁 발발 직후 제1사단에 대한 전투지원 임무를 부여받고 대구에서 서울로 이동하여 3대대가 25일 오후 김포 지구에, 연대(-)가 26일 오후 봉일천에 투입되어 지연전을 전개하였다. 이어 안양으로 철수한 22연대는 혼성 제3사단에 편입되어 수원 방어작전에 임한 후, 7월 4일부터 축차적인 철수를 단행하여 천안-추풍령을 경유하여 7월 23일 대구에 도착하였다. 한편 진주의 제23연대는 6월 29일 동해안의 울진으로 출동하여 북한군 제5사단의 남하를 저지한 후, 영덕으로 철수하여 7월 19일부터 2주일 동안 영덕 일대에서 공방전을 전개하였다.
사단은 8월 9일부터 9월 22일까지 포항지구에서 해안을 따라 남진하여 아군의 방어선을 돌파하려는 적을 맞아 치열한 공방전을 전개하였다. 8월 18일 제26연대를 예속받은 사단은 포항 방어에 중요한 천마산을 놓고 수차례의 쟁탈전을 전개했으며, 경주로 진입하려는 적을 저지하였다.
1950년 9월 19일 형산강 도하작전을 실시한 사단은 9월 22일 반격으로 전환하여 영덕-삼척-강릉으로 진격한 후, 10월 1일 38선을 최초로 돌파한 뒤 북한군 제12사단과 경비여단 등을 격퇴하고 11일 원산을 탈환하여 적의 퇴로를 차단하고 영흥만을 장악하는 전과를 올렸다.
이어 혜산진과 나남으로 진격한 사단은 중공군의 개입으로 12월 1일 철수를 시작하여 12월 9일 성진항에서 승선(18연대 제외)한 후 해상으로 철수하여 12월 12일 제22연대를 구룡포로, 제23연대를 부산으로 상륙시켰다. 사단은 12월 15일부로 제18연대를 예속시키고, 19일부로 제26연대를 배속해제한 후 제2군단에 배속되어 원주로 이동하였다.
1951년 1월 5일 제3군단으로 배속전환된 사단은 1월 15일부터 19일까지 남대리 지구에서 적 제3, 제9사단 및 제5유격여단과 치열한 공방전을 전개하였으며, 1월 26일까지 녹전지구 및 함백산 일대에서 전투를 실시하였다. 사단은 2월 11일부터 전개된 중공군 및 북한군의 제4차 공세(2월 공세)에 맞서 횡성지구에서 전투를 수행한 후, 킬러작전(2. 21~3. 6)에 참가하여 제천 북쪽 주천에서 공격을 개시하여 3월 7일 횡성-평창을 연하는 애리조나 선까지 진격하고 정선으로 이동하였다.
또한 사단은 4월 22일 전개된 중공군 제5차 1단계 춘계공세에서는 한석산-경봉지구 방어전투를 실시하여 1,500여 명의 적을 사살 및 생포하는 전과를 거두었으나, 5월 16일부터 전개된 중공군의 제5차 2단계 춘계 공세시 현리전투에서 중공군 2개 군단과 북한군 3개 사단의 공격을 받고 하진부리로 철수하였다.
김사득 일등병은 사단이 현리전투 이후 하진부리로 철수하여 전투력을 재정비하고 있던 1951년 7월 11일, 전초지역에서 적과 조우전을 벌이다가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살신보국정신(殺身保國精神)을 선양하고 후세에 교훈으로 남기기 위하여 국립현충원(國立顯忠院, 25-1-170)에 봉안하고,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27-ㄴ-051)에 그 이름을 새겨 추모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