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김사만 (金四万)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8810781
  • 전몰일자 : 1953-04-11

공훈사항

김사만 이등중사는 1930년 8월 19일 경상남도 합천군 쌍백면 삼리에서 출생하여, 육군에 입대한 후(입대일자 미상) 제8사단 16연대에서 복무하였다.
제8사단은 1950년 6월 25일부터 7월 1일까지 강릉지역에서 동해안을 따라 남하하는 북한군 제5사단과 해안으로 상륙해 남으로부터 협공을 가하는 북한군 제945부대와 임원진일대로 침투한 제766부대 등 2개 사단 규모의 적을 맞아 치열한 공방전을 실시하였다. 이후 사단은 7월 22일 제16연대를 배속받아 축차적인 철수작전을 전개하며 낙동강을 도하하여 낙동강 방어선을 형성하였다.
이 과정에서 사단은 6월 29일부터 7월 12일까지 제천 및 단양지역에서, 7월 14일부터 22일까지 풍기지구에서, 7월 23일부터 28일까지 옹천에서, 그리고 7월 29일부터 8월 3일까지 안동지구에서 각각 치열한 공방전을 실시하였다. 낙동강을 도하해 의성으로 철수한 사단은 8월 3일부터 의성지구 전투를 실시하여 적의 진출을 13일이나 지연시켰고, 9월 2일부터 12일까지 영천 전투를 실시하여 적을 격퇴하고 영천을 탈환함으로써 반격작전으로 이행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였다.
1950년 9월 20일 반격으로 전환한 사단은 단양-동두천을 거쳐 10월 8일 38도선을 돌파하고 연천-곡산-덕천-영원까지 진격하였다. 그러나 사단은 11월 9일부터 27일까지 평남 덕천 및 영원지역에서 중공군 제42군의 공격을 받고 방어전투를 전개한 후 철수작전을 감행하였다. 신창-신계-연천을 거쳐 1951년 1월 1일 홍천까지 철수한 사단은 1950년 12월 23일부터 다음해 1월 3일까지 춘천지구에서 적의 신정공세를 맞아 치열한 전투를 실시하였다.
미 제10군단으로 배속이 변경된 사단은 원주에서 홍천 방면으로 반격을 실시하던 중 2월 4일부터 15일까지 횡성 북쪽에서 중공군 제40군 및 제66군과 치열한 전투 끝에 막대한 피해를 입고 제천을 거쳐 대구로 철수하여 재편성하였다.
1951년 7월 사단은 원통리 북방 노전평 지구의 제5사단 작전지역을 인수하고 8월부터 10월까지 3차에 걸친 노전평지구 전투와 백석산 전투를 실시해 785고지, 1031고지, 965고지, 854고지와 백석산을 점령하는 대대적인 전과를 거두었다.
1951년 11월 20일 백야전사령부로 배속이 변경된 사단은 남원으로 이동해 호남지구에서 공비 소탕작전을 실시하고 1952년 3월 강원도 인제군 서화리로 이동했으며, 9월에는 812 및 854고지 전투를 수행하였다. 10월 25일 수도사단과 교대해 수도고지ㆍ지형능선의 방어임무를 인수한 사단은 1953년 5월까지 방어지역에서 전초진지 쟁탈전을 전개하였다. 사단은 5월 27일부터 6월 4일까지 수도고지ㆍ지형능선에서 중공군 제67군의 공격을 받고 치열한 전투를 전개하였다.
김사만 이등중사는 사단이 수도고지ㆍ지형능선의 방어임무를 수행하고 있던 1953년 4월 11일, 전초진지 쟁탈전에 참가하여 용전분투하다가 적의 흉탄을 맞고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유해를 본가에 봉송하고, 살신보국정신(殺身保國精神)을 선양하고 후세에 교훈으로 남기기 위하여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64-ㅎ-023)에 그 이름을 새겨 추모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