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김상도(金相道)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0170773
  • 전몰일자 : 1950-10-31

공훈사항

김상도 하사는 1927년 2월 3일 경상북도 경주군 현곡면 라원리에서 출생하여, 1950년 8월 18일 육군에 입대한 후 제6사단 19연대에서 복무하였다.
제6사단은 1950년 6ㆍ25전쟁이 발발하자 예비인 제19연대를 즉각 춘천으로 투입하여 춘천과 홍천 지구에서 6월 30일까지 북한군 제2사단과 제12사단의 남하를 성공적으로 저지하였고, 육군본부의 명령에 따라 횡성-충주로 철수하면서 지연전을 전개하여 많은 전과를 올렸다.
국군의 한강방어선이 붕괴된 후인 1950년 7월 5일부터 11일까지 사단(-)은 충주에서 남하하는 적을 저지하였고, 예하 7연대는 음성 지구에서 적의 선두부대인 제15사단 제48연대를 궤멸시키는 대전과를 거둠으로써 제7연대 전 장병이 일 계급 특진하는 영예를 획득하였다. 이어서 수안보를 거쳐 남하한 사단은 이화령 전투(7. 14)와 문경전투(7. 16)에서는 적 제1사단에 결정적인 타격을 가해 상주로의 진출을 저지하였고, 7월 19일부터 31일까지 함창-점촌 북쪽에 있는 옥녀봉과 조봉 일대에서 북한군 제1사단 및 제13사단과 치열한 전투를 실시한 후, 낙동강 방어선으로 철수하였다.
사단은 의성-군위-의흥 선에서 약 1개월에 걸친 공방전을 벌인 후, 1950년 8월 30일 영천 북쪽의 신녕지구에서 마지막 공세를 통해 아군 제8사단의 방어선을 돌파해 영천 동측방으로 진출하려던 적 제8사단의 공격을 성공적으로 방어하였다.
9월 16일 신녕에서 반격작전으로 전환한 사단은 22일 적의 방어진지를 돌파하고, 23일부터 추격작전을 전개하여 충주-원주를 거쳐 10월 2일 춘천을 탈환하고 38선을 돌파하였다. 사단은 화천-김화-원산을 거쳐 19일 성천을 점령한 후 20일 순천에서 미 공수부대와 연결하였다. 사단은 계속 북진하여 개천, 영변과 구장동을 거쳐 23일에는 제7연대가 희천으로, 제2연대는 군우리 북쪽 자작으로 진출하였다.
10월 24일 추수감사절 공세가 개시되어 제2연대는 24일 온정리를 점령하고, 25일 벽동을 목표로 북진을 향하여 진격하던 도중 동림산 일대에서 중공군의 저지를 받고 온정리로 철수하였으나, 26일 새벽 중공군의 대대적인 공세에 제2연대는 분산되어 운산과 회천으로 철수하였다. 우전방 제7연대는 10월 24일 회천을 출발하여 26일 초산을 점령한 후 압록강변에서 역사적인 태극기 게양식을 거행하였다. 사단 예비인 제19연대는 10월 24일 회천에서 대기 중에 중공군의 공격이 개시되자, 26일 제7연대의 퇴로를 확보하기 위하여 제1대대를 회목동으로 이동시키고, 연대(-)는 제2연대를 구출하기 위하여 온정리로 이동하였다. 그러나 29일까지 중공군과 격전을 치른 후 전 연대는 철수하였다.
각 연대는 철수하여 11월 6일 청천강 남쪽 개천에 도착하여 사단은 군단예비로 정비에 들어갔다.
김상도 하사는 연대가 회목동 및 온정리 일대에서 중공군과 격전을 치루고 철수 중에 있던 1950년 10월 31일, 후위에서 중공군과 교전 중에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살신보국정신(殺身保國精神)을 선양하고 후세에 교훈으로 남기기 위하여 국립현충원(國立顯忠院, 04-7-081)에 봉안하고,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41-ㅌ-097)에 그 이름을 새겨 추모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