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김사문 (金士文)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등병
  • 군번 : 0331583
  • 전몰일자 : 1950-09-30

공훈사항

김사문 일등병은 경상남도 양산군 하북면 순지리에서 출생하여(생년월일 미상), 육군에 입대한 후(입대일자 미상) 육본직할부대(제1교육대)에서 복무하였다.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국군은 소련제 T-34 전차를 앞세운 우세한 적을 맞아 지연전을 전개하면서 7월 하순에는 낙동강 방어선까지 후퇴하였다. 개전 초부터 적보다 열세한 병력으로 용전분투하였지만, 계속된 치열한 전투와 철수과정에서 많은 병력을 손실하였다.
북한군은 낙동강 방어선을 돌파하고 남한 전지역을 석권하고자 최후의 발악적인 공격으로 8월 공세와 9월 공세를 전개함으로써 대구 북쪽에서는 일진일퇴의 치열한 공방전이 전개되었다.
특히 9월 2일에는 북한군 제3사단과 제13사단 그리고 제1사단 등 3개 사단이 공격을 개시하여 다부동 및 가산지역을 돌파하고 일부 부대가 팔공산까지 위협하였다.
국군과 유엔군은 낙동강 방어선에서 북한군의 8월 공세와 9월 공세를 맞아 치열한 전투를 수행하면서 병력손실이 급증하자 보충해야 할 신병의 교육훈련이 절박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국본 일반명령(육) 제46호에 의거 1950년 8월 14일 경상남도 부산에서 제1교육대, 제5교육대, 박승훈부대 및 제9교육대를 창설하여 손실병력을 보충함으로써 낙동강 방어선을 사수하였다.
9월 15일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자, 국군과 유엔군은 반격으로 전환하여 38선을 돌파하고 압록강과 두만강까지 진격하였다.
김사문 일등병은 국군과 유엔군이 반격으로 전환하여 많은 부대들이 38선 일대에 도달해있던 1950년 9월 30일, 전투부대에 배속되어 반격 중에 북한군 패잔병들과 교전하다가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살신보국정신(殺身保國精神)을 선양하고 후세에 교훈으로 남기기 위하여 국립현충원(國立顯忠院, 12-4-018)에 봉안하고,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82-ㅍ-101)에 그 이름을 새겨 추모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