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김사문 (金士文)

  • 군별 : 육군
  • 계급 : 중위
  • 군번 : 208973
  • 전몰일자 : 1951-02-14

공훈사항

김사문 중위는 전라남도 영암군 도포면 원항리에서 출생하여(생년월일 미상), 1951년 1월 10일 육군 소위로 임관한 후 제3사단에서 복무하였다.
* 장교기록카드 없음
1947년 12월 1일 부산에서 제3여단이 창설되었고, 1949년 5월 12일 육일명 제15호에 의거 2개 연대 편성으로 대구에서 제3사단으로 승격되었다.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이 기습공격을 가해오자 제3사단은 제1사단을 지원하기 위하여 예하 제22연대를 출동시켰다. 제22연대는 25일 대구에서 서울로 이동하여 3대대가 25일 오후 김포 지구에, 연대(-)가 26일 오후 벽제에 투입되어 지연전을 전개하였다. 이어 안양으로 철수한 제22연대는 혼성 제3사단에 편입되어 수원방어작전에 임한 후, 7월 4일부터 축차적인 철수를 단행하여 천안-청주-추풍령을 경유하여 7월 23일 대구에 도착하였다.
1950년 9월 19일 형산강 도하작전을 실시한 사단은 9월 22일 반격으로 전환하여 영덕-삼척-강릉으로 진격한 후, 10월 1일 38선을 최초로 돌파한 뒤 북한군 제12사단과 경비여단 등을 격퇴하고 10일 원산을 탈환하여 적의 퇴로를 차단하고 영흥만을 장악하는 전과를 올렸다.
이어 혜산진과 나남으로 진격한 사단은 중공군의 개입으로 12월 1일 철수를 시작하여 사단(-26연대)는 12월 9일 성진항에서 출항하여 사단 지휘부는 흥남항에 상륙하였다. 사단의 2개 연대와 수도사단 제18연대가 12월 10일 흥남을 출항하여 12월 12일 제22연대를 구룡포로, 제23연대를 부산으로 상륙시켰다.
사단은 12월 15일부로 제18연대를 예속시키고, 19일부로 제26연대를 예속해제한 후 제2군단에 배속되어 원주로 이동하였다.
사단은 1951년 2월 11일부터 전개된 중공군 및 북한군의 제4차공세(2월공세)에 맞서 횡성지구에서 전투를 수행한 후, 킬러작전(2. 21~3. 6)에 참가하여 제천 북쪽 주천에서 공격을 개시하여 3월 7일 횡성-평창을 연하는 애리조나선까지 진격하고 정선으로 이동하였다.
또한 사단은 1951년 4월 22일 전개된 중공군 제5차 1단계 춘계공세에서는 인제 동쪽에 있는 한석산-경봉지구 방어전투를 실시하여 전과를 거두었으나, 5월 16일부터 전개된 중공군의 제5차 2단계 춘계공세시 현리전투에서 중공군 2개 군과 북한군 3개 사단의 공격을 받고 하진부리로 철수하였다.
제3사단은 1951년 5월 22일 제3군단에서 제1군단으로 배속이 전환되어 동해안에서 부대정비를 실시한 후, 5월 29일 예하 18연대가 송천리에서 공격하여 30일 설악산 남단 마산리를 점령하였다.
김사문 중위는 중공군 및 북한군의 제4차 공세(2월 공세)가 치열했던 1951년 2월 14일, 소대원들을 이끌고 횡성지구 방어전투에 참가하여 용전분투하다가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살신보국정신(殺身保國精神)을 선양하고 후세에 교훈으로 남기기 위하여 국립현충원(國立顯忠院, 47-7-191)에 봉안하고,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26-ㅋ-052)에 그 이름을 새겨 추모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