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김상도(金相道)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8812565
  • 전몰일자 : 1953-07-14

공훈사항

김상도 이등중사는 1929년 6월 6일 경상남도 합천군 대양면 무곡리에서 출생하여, 1952년 3월 26일 육군에 입대한 후 수도사단에서 복무하였다.
1949년 6월 20일 국본 일반명령 제6호에 의거 기갑연대, 제2연대, 제17연대를 기간으로 서울 용산에서 수도경비사령부가 창설되었다.
1950년 6월 25일 수도경비사령부는 전쟁발발과 동시에 북한군의 진격을 저지하기 위하여 예하의 제3연대와 제18연대를 의정부지구에 투입하고, 동일부로 제3연대와 제18연대를 제7사단으로 일시 예속전환시켰다. 사령부는 6월 28일부터 7월 4일까지 한강선 방어전투에 참가하여 보병 3개 사단과 전차 1개 여단으로 편성된 북한군의 남하를 성공적으로 저지하였다.
수도경비사령부는 1950년 7월 5일 수도사단으로 개칭함과 동시에 제1연대를 예속시켰다. 사단은 7월 6일 진천지구전투, 7월 13일 청주 전방 미호천 전투, 14~16일 청주 남쪽 고은리 전투를 수행하고, 7월 17일 보은에 도착하였다. 사단은 다시 철수하여 7월 말에는 낙동강 방어선 형성시 의성 동쪽 길안 일대에서 방어진지를 구축하였다.
수도사단은 9월 16일부터 반격작전으로 전환하여 제3사단과 함께 10월 1일 38선을 돌파하고, 10월 10일 원산, 17일 함흥, 29일 성진을 점령한 후 계속 진격하여 11월 25일 청진을 점령하고 30일에는 부령까지 진격하였다.
그러나 중공군의 개입으로 12월 1일 청진에서 철수한 사단은 12월 17일 흥남항에서 해상으로 철수하여 18일 묵호에 상륙한 후 양양으로 이동하여 제9사단의 양양-서림간 방어선을 인수하였다.
사단은 1951년 6월 3일부터 12일까지 향로봉지구전투를 실시하여 북한군 제13사단을 격퇴하고 940고지를 점령하였다. 또한 8월 18일부터 23일까지 미 제8군의 작전에 참가하여 서화리 동북방의 924고지를 점령한 사단은 10월 12일부터 15일까지 북한군 제19사단으로부터 월비산을 탈취하는 전과를 거두고 11월 26일 여수로 이동하여 호남지구에서 공비소탕작전을 전개하였다.
사단은 호남지구 공비소탕작전을 실시하고, 1952년 3월 18일 화천으로 이동하여 금성천 북안의 미주리선에 배치되었다. 7월 8일부터 10월 14일까지 사단은 수도고지와 지형능선에서 중공군 제12군 예하 제34사단과 제35사단의 공격을 받고 뺏고 빼앗기는 공방전을 전개한 끝에 진지를 확보하는데 성공하였다.
12월 12일 강원도 사창리로 이동하여 미주리선 방어임무에 돌입한 사단은 1953년 4월부터 6월까지 금성돌출부 서측의 번개고지, 샛별고지, 무명고지 전투를 수행한 후, 7월 13일부터 금성지구전투를 실시하여 4,900여 명의 적을 사살하는 대전과를 거두고 휴전에 들어갔다.
김상도 이등중사는 휴전을 불과 2주일여 앞둔 1953년 7월 14일, 금성지구 전투에 참가하여 용전분투하다가 적의 흉탄을 맞고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살신보국정신(殺身保國精神)을 선양하고 후세에 교훈으로 남기기 위하여 국립현충원(國立顯忠院, 36-7-013)에 봉안하고,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07-ㄲ-068)에 그 이름을 새겨 추모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