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김사봉 (한자미상)

  • 군별 : 육군
  • 계급 : 중위
  • 군번 : 123755
  • 전몰일자 : 1953-03-10

공훈사항

김사봉 중위는 1927년 1월 27일 평안남도에서 출생하여 1952년 11월 8일 육군 소위로 임관한 후 제2사단에서 복무하였다.
사단은 1950년 6월 25일 기습공격한 북한군의 진격을 저지하기 위하여 예하연대를 전방으로 전개시켰다. 제5연대는 25일 대전에서 출발하여 20시 금오리에 도착한 후 26일 새벽 축석령으로 이동하였고, 제16연대는 25일 청주에서 출발하여 26일 7시 의정부에 도착하였으며, 제25연대는 25일 온양에서 출발하여 26일 11시 창동에 도착한 후 의정부 남쪽 백석천에 투입되었다.
제2사단은 38선으로부터 철수하는 제7사단을 엄호한 후, 창동을 경유하여 28일 한강방어선으로 철수하여 신사리-동작리에 배치되어 방어작전을 수행하였다. 사단은 7월 3일 한강선에서 철수하여 지연전을 전개하다가 병력 분산으로 7월 24일 사단이 해체되고 대구지구방어사령부로 개칭되었다.
1950년 11월 7일 국본 일반명령 제103호에 의거 서울에서 재창설된 제2사단은 제17연대를 편입한 데 이어 11월 11일과 13일 제31연대와 제32연대를 편입하였다. 재창설 직후 사단은 포천-평강 지구에서 후방지역 잔적소탕작전을 실시한 후 12월 18일부터 춘천 지구에서 적의 남진을 저지했으나, 군단 작명에 의거 청평-양평-예천으로 철수하였다.
사단은 제8사단 21연대의 2개 대대를 배속 받아 1951년 1월 20일부터 4월 초까지 일월산과 보현산 일대에서 공비 소탕작전을 실시하고, 미 제9군단으로 배속 변경된 직후 경기 양평으로 이동하여 5월 말까지 백운산 진격작전을 전개하였다. 이어 사단은 6월 1일 김화 근남 일대에서 중공군 제52, 53군 예하 2개 연대와의 치열한 공방전을 시작으로 6월 말까지 375고지 및 734고지 전투를 전개, 중공군 3,000여 명을 사살 및 생포하는 전과를 거두었다. 이후 사단은 김화일대에서 방어진지를 구축하고 교착된 전선에서의 진지전에 대비하였으며, 10월 13일부터 21일까지 사단은 김일성고지 일대에서 중공군 3개 연대와 치열한 교전을 실시한 끝에 고지를 점령하였다.
1952년 3월 30일 사창리 지역으로 이동한 사단은 10월 14일부터 11월 24일까지 저격능선 전투를 실시하였다. 이 전투는 김화 북방의 저격능선을 탈취하기 위한 공격전투로서 사단은 저격능선 일대에 배치되어 있던 중공군 제15군을 공격, 목표를 점령한 후 42일 동안 고지를 확보하는 투지를 보여주었다. 사단은 20여 회의 공방전을 전개한 끝에 15,000여 명의 적을 사살 및 생포하는 대전과를 거두었으며, 휴전 무렵인 1953년 7월에는 철의 삼각지대 서쪽 주요 요충지인 화살머리고지 전투에서 중공군 및 북한군의 완강한 반격을 물리치고 요충지를 탈환하였다.
김사봉 중위는 1953년 3월 10일, 강원도 김화 북방의 전초지역에서 소대원들을 이끌고 작전임무 수행 중에 적의 흉탄을 맞고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살신보국정신(殺身保國精神)을 선양하고 후세에 교훈으로 남기기 위하여, 국립현충원(國立顯忠院, 22-1-498)에 봉안하고 영령을 추모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