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김사영 (金思永)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등병
- 군번 : 1300964
- 전몰일자 : 1950-06-25
공훈사항
김사영 일등병은 전라북도 익산군 망성면 화산리 917번지에서 출생하여(생년월일 미상), 육군에 입대한 후 제6사단 2연대에서 복무하였다.
1948년 4월 29일 수색에서 제7, 8, 10연대를 기간으로 제4여단이 창설된 후, 11월 20일 청주에서 제6여단으로 개편되었다. 그 후 1949년 5월 12일 육본 일반명령 제15호에 의거 제6사단으로 승격되었다.
원주에 사령부를 둔 제6사단은 제7연대를 춘천지구에, 제2연대를 홍천 동북지구에 각각 배치하여 38선 경비임무를 수행하였고, 예비인 제19연대는 원주에 집결보유하고 있었다.
제2연대는 제1대대를 서측방의 관대리 부근 소양강 남쪽 일대에, 제3대대를 동측방의 현리 일대에, 제2대대를 연대 예비로 당포리에 배치하였다.
1950년 6월 25일 연대 정면의 적은 북한군 제12사단으로서 양구-신남-홍천 축선에 주공을 지향시키고, 인제-현리 접근로에 조공을 투입하고 공격하여 왔다. 그런데 최초 제2연대의 주 전투지대가 된 마노진(馬奴津) 나루터가 전날 내린 많은 비로 소양강 물이 불어나 도섭이 어렵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나루터 남쪽 청구리 쪽으로 북한군이 6월 25일 새벽에 2차례의 도섭을 시도하였으나 제1대대 경계 병력에 의해 격퇴되었다. 두 번이나 공격이 돈좌된 적은 아군 진지에 맹렬한 포격을 가하는 동시에 45밀리 대전차포 2문을 나루터 부근으로 추진하여 근접지원사격을 계속하는 가운데 3번째의 공격제파를 투입하였다. 청구리의 1중대 2소대는 적의 집중포격으로 병력의 2/3가 손실되고 탄약마저 떨어져 방어진지를 사수하던 20여 명은 백병전을 전개하다가 분산되어 철수하였다.
제2연대장 함병선 대령은 연대 예비인 제2대대를 신남 남쪽 어론리(於論里) 서쪽에 그리고 전방에서 철수중인 제1대대를 어론리 도로 동쪽에 재배치하고 있었다.
한편 현리의 제3대대는 38선 부근의 흙고개-진다리 일대에서 격전을 치른 다음 현리 남쪽 오마치 고개에 저지진지를 편성하였으나 통신이 두절되어 연대에서는 대대의 행방마저 알 길이 없었다.
연대장은 어론리에서 적을 격멸하기 위해 대전차특공대를 편성하여 자주포 2문을 격파하고 적을 격퇴하였으나 적은 26일 전열을 정비하고 자주포를 앞세워 강력한 포병의 지원을 받으며 재차 공격을 해왔다. 연대는 치열한 전투 끝에 자은리로 철수하였으나 적의 공격기세에 밀려 다시 철정리까지 철수하였다.
김사영 일등병은 개전 당일인 1950년 6월 25일 연대의 방어전투에 참가하여 기습공격해오는 북한군을 맞아 용감히 싸우다가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살신보국정신(殺身保國精神)을 선양하고 후세에 교훈으로 남기기 위하여 국립현충원(國立顯忠院, 28-6-113)에 봉안하고,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37-ㅁ-039)에 그 이름을 새겨 추모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