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김사영 (金四永)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등병
  • 군번 : 1506269
  • 전몰일자 : 1950-06-25

공훈사항

김사영 일등병은 경상남도 부산시에서 출생하여(생년월일 미상), 1949년 7월 8일 육군에 입대한 후 육본직할부대(보병학교)에서 복무하였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군의 기습공격을 받은 국군은 북한군의 공격을 저지하기 위하여 미약한 병력과 장비로 용전분투하였다. 육군본부는 여러 직할부대를 동원하여 전방의 제1사단, 제6사단, 제7사단에 배속시켜 방어력을 강화하였다.
육군본부는 6월 25일 수도경비사령부 예하 제3연대를 제7사단에, 그리고 오후에는 제18연대(-1)도 추가로 배속하였으며, 제8연대마저 제6사단에 배속하여 가평지구에 투입하였다. 그리고 독립기갑연대 제1대대(장갑차)도 제1, 6, 7, 8사단에 배속되었다. 또한 서울 특별연대를 제1사단에, 전투경찰 1개 대대가 배속된 육사생도대대를 제7사단에 배속하는 한편, 포병학교 제1교도대대는 제1, 6, 7사단에, 제2교도대대는 제7사단에 배속하였다. 6월 26일 저녁에는 육본 장교연대를 의정부지구전투사령부에 배속하여 창동지역에 배치하였다.
국군은 철수와 방어 그리고 다시 철수로 이어진 수세적인 전투만 수행하다가 일시 공격으로 전환하여 혼성대대 병력이 동두천을 탈환하고 소요산까지 진출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곧 이은 북한군의 대규모 역습을 받아 의정부 방면으로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국군은 의정부-창동-미아리 방어선에서 육탄공격까지 감행하면서 결사적으로 저항하였으나, 전투력 열세로 수도 서울을 적에게 내어주고 한강 이남으로 철수하여 6월 28일부터 7월 4일까지 한강선 방어작전을 전개하였다.
김사영 일등병은 개전 당일인 1950년 6월 25일, 전방의 전투부대에 배속되어 공격해오는 북한군을 맞아 용전분투하다가 적의 흉탄을 맞고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살신보국정신(殺身保國精神)을 선양하고 후세에 교훈으로 남기기 위하여 국립현충원(國立顯忠院, 29-6-199)에 봉안하고,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78-ㅇ-097)에 그 이름을 새겨 추모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