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양성학(梁聖學)

  • 군별 : 경찰
  • 계급 : 경사
  • 군번 :
  • 전몰일자 : 50.10.03

공훈사항

양성학 경사는 1931년 8월 16일 경북 영풍군 부석면에서 출생했다. 양 경사는 경북 경찰학교에 지원하여 초임 교육과정을 거쳐 경찰에 입문했고(경찰 입대일자 미상), 양 경사가 경북경찰국 구미경찰서에서 성실하게 근무하던 중 6·25전쟁이 발발했다.
1950년 6월 25일 치안국은 전시 비상경비총사령부 체제로 전환하고 전국 경찰에 전투태세 돌입을 명령했다. 한강방어선을 돌파한 북한군이 계속 남진하고 후방에는 공비들이 출몰하자, 군경 수뇌부는 적의 남진을 저지와 후방 위협 제거를 동시에 해결해야 했다. 이에 경찰은 7월 12일 서남지구 방어계획을 수립하여 군이 중부·중동부 축선에서 적의 남진 저지에 주력할 동안 서남부 지역에서 적의 길목을 차단했다. 이러한 전황 속에 경북 경찰은 7월 6일부터 부산·김천간 철도경비에 투입되었다.
7월 14일 북한군 1개 연대가 예천을 공격하자, 예천경찰서와 미 제25사단 1개 대대가 적을 저지하면서 18일까지 진지를 고수하다가 19일 안동으로 철수했다. 20일 예천경찰서 5개 지서와 제8사단 예하부대가 공격, 적을 격파하고 예천을 탈환했다.
8월 24일 북한군 제1사단 예하 대대가 아군의 방어선을 돌파하고 칠곡군 가산면을 공격했다. 경찰과 국군 제8사단 제10연대가 적을 제압했으나, 적의 끈질긴 공격으로 청도의 경북경찰대대가 서울경찰 1개 대대와 함께 칠곡에 증원되었다. 적이 계속 팔공산 지역을 공격하자 비상경비총사령부는 일대 전투경찰부대의 지휘계통을 정비하기 위해 팔공산지구전투사령관을 임명하였다. 이 때 경북도경은 제25전투대대(양홍식 총경)를 편성하여 대구에 배치하여 공용화기 교육으로 전투력을 향상시키면서 대구방어작전을 수행했다.
9월 5일 국방부와 육군본부가 부산으로 철수하면서 민심이 혼란해지자, 8일 미 제8군사령관은 치안을 담당한 경북경찰국장(송관수 총경)을 대구방위사령관으로 임명했다가 이틀 후 지휘체계 단일화를 이유로 전시특명검열보좌관(민기식 대령)으로 교체했다. 이 때 적이 대구 후방을 차단하려고 운문산·채약산·구룡산 등지에 침투했고, 청도·경산·영천·경주지역에 배치 중인 서울·경기·경북·충남 경찰병력을 재편성해서 운문산지구 경찰전투사령부(한경록 경무관)를 설치하여 대응했다.
이러한 전황 가운데 군 주요보급로 경비, 피난민의 정리 및 구호조치, 중요시설의 경호경비, 오열 색출에 진력하던 양 경사는 10월 3일 영풍군 부석면에서 활동 중인 공비와 교전하던 중 적이 쏜 총탄에 맞아 안타깝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양성학 경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96-ㄷ-024)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