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양성한(梁聖漢)

  • 군별 : 육군
  • 계급 : 이중
  • 군번 : 0232026
  • 전몰일자 : 51.10.24

공훈사항

양성한 이등중사는 1926년 1월 4일에 서울특별시 성동구 금호동에서 출생했다. 국군과 유엔군이 압록강까지 진격했다가 두 차례에 걸쳐 대규모 중공군의 기습공격을 받고 다시 38도선으로 철수하여 방어진지를 편성했던 1950년 12월 30일, 그는 부산에 위치한 육군 제2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 후 제2사단 직할부대인 공병대대로 배치되었다.
제2사단은 11월 7일부로 서울에서 재창설되었으며, 이후 12월 중순에 포천 북방의 양문리-탑두울을 잇는 선에 방어진지를 구축하고, 추후 예상되는 중공군 공격에 대비했다. 중공군은 12월 31일 야간에 ‘중공군의 신정공세’(일명 ‘3차 총공세’)로 서울을 압박했다. 양성한 이등중사는 다음날 새벽에 장병들과 함께 진지에서 이탈하여 1월 7일에 충주에 집결했다. 이후 2월 13일에는 안동으로 이동하여 후방지역 공비소탕작전을 실시했다.
제2사단은 안동 일대에서 후방지역작전을 완료하고, 4월 28일에 다시 미 제9군단으로 배속되어 청평지역으로 이동하여 ‘중공군의 5월 공세’를 저지하고, 재반격작전에 참가하여 육단리-적근산을 잇는 선까지 진출했다. 이후 전선은 소강상태가 계속되자, 유엔군사령관은 장병들의 사기를 진작시킴과 동시에 휴전협상을 촉진하기 위해 각 군단별로 방어진지 전방에 대한 공세행동을 하라고 명령했다.
이에 제2사단은 진지 전방의 감제고지인 745고지를 탈취하기 위해 8월 2일 공격을 목표를 탈취했다. 중공군은 이날 야간에 반격을 감행하여 다시 빼앗겼다. 이러한 피아간의 공방전은 8일까지 계속되었다. 이후 745고지에 대해 9월 1일부터 3일까지 다시 공격하여 탈취했다. 이후 사단은 10월 13일에 김화-금성진격작전을 개시하여 10월 18일까지 연대별로 부대를 교대하면서 공격을 실시하여 김화 북쪽 14km에 있는 금성까지 진격하여 금성천 분지를 확보했다.
양성한 이등중사는 공병중대 선임하사로서 전방 연대에 공격시에는 장애물 개척, 방어시에는 장애물 설치를 지원함으로써 작전에 기여했다. 그러던 중 그는 10월 18일에 공격시에 장애물 개척 임무를 수행하던 중 적의 공격으로 중상을 입고 후송되었으나, 회복하지 못하고 10월 24일에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양성한 이등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 명비(019-ㄴ-090)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