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양성호(梁聖鎬)

  • 군별 : 경찰
  • 계급 : 순경
  • 군번 :
  • 전몰일자 : 50.08.05

공훈사항

양성호 순경은 1926년 4월 17일 전라남도 광산군 본량면에서 출생했다. 양 순경은 전남경찰학교에 지원하여 초임교육을 받고 경찰에 입문했고(경찰 입대일자 미상), 양 순경이 전남경찰국 광산경찰서에서 치안 확보에 매진하던 중 6·25전쟁이 발발했다.
1950년 6월 25일 전쟁이 발발하자 치안국은 전시 비상경비총사령부 체제로 전환했다. 총사령부는 전국 경찰에 전투태세로 돌입하라고 명령했고, 광산경찰서도 전투태세를 갖추었다. 북한군은 6월 28일 서울을 점령하고, 7월 4일 한강방어선을 돌파하여 남진했다. 이러한 전황 속에서 양 순경은 동료 경찰들과 함께 군 주요보급로 경비, 피난민의 정리 및 구호조치, 오열 색출 등의 후방지역작전 수행에 진력했다.
한강방어선을 돌파한 북한군이 계속 남진하자, 전남경찰국은 각 서(署)에서 15명씩을 차출하여 전북경찰국에 배속하고, 나머지 병력으로 전남전투경찰부대를 편성했고, 양 순경과 광산경찰서 병력도 전투경찰로 재편되었다. 북한군 제6사단은 호남지역에 투입되어 7월 16일 금강을 도하, 이리-전주로 남진했다. 이에 육군본부는 7월 17일 서해안지구전투사령부를 설치하고, 전북·전남 편성관구사령부와 신편 제7·제5사단, 경찰 등을 배속하여 지역방어임무를 수행하도록 했다.
북한군 제6사단은 7월 20일 전주를 점령하고 잠시 부대를 정비한 후, 7월 22일 공격을 재개했다. 북한군 제13·제15연대는 국군과 경찰의 저항을 뚫고 23일 장성, 광주를, 24일 화순, 나주, 장흥을 점령하고 보성 방면으로 진출했고, 제1연대는 24일 남원을 점령 후 구례-순천으로 남진했다. 이에 전남편성관구사령관은 순천, 광산 인근 경찰과 각지에서 물러난 경찰을 3개 부대로 재편하여, 그 중 양 순경이 소속된 부대를 순천 서북방 학구로 출동시켜 적을 저지하도록 했다.
7월 25일 야간에 북한군 제1연대가 접근하여 화력을 집중하여 공격을 개시했다. 양 순경의 경찰부대는 빈약한 무기와 탄약으로 북한군 정규군의 압도적인 공격을 막아낼 수 없었다. 경찰부대는 결국 분산되어 여수로 철수했다. 여수 외곽에 배치된 경찰부대는 7월 26일 북한군 제1연대의 공격에 또다시 많은 피해를 입고 결국 해군 함정 문산호에 탑승하여 해상으로 철수했다.
철수 과정에서 그는 주력부대와 떨어졌고, 북한군이 7월 26일까지 목포, 광주, 여수를 비롯한 호남지역을 완전 점령함으로써 적진 속에 고립되었다. 양 순경은 8월 5일 함평군 월야면에서 적과 조우하여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이 쏜 총탄에 맞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양성호 순경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99-ㄷ-018)에 그의 이름을 새겨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