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양성호(梁成浩)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1505246
  • 전몰일자 : 50.06.26

공훈사항

양성호 일병(계급 오류 추정)은 경상남도 양산군 상북면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발발 이전인 1946년 2월 24일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 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1사단 제11연대에 배치되었다.
양성호 일병은 신생 조국을 구한다는 자부심으로 가득 차서 작전과 훈련에 임하였다. 당시 사단은 청단에서 고랑포까지 94㎞에 이르는 광정면의 38도선 경계임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사단은 제12연대를 좌측 개성일대에, 제13연대를 우측 임진강일대에 배치해 38도선 경계임무를 수행하게 하고 제11연대는 사단의 예비대로 수색에 배치해 운용하고 있었다.
양성호 일병은 사단의 지침에 따라 38도선 경계부대의 방어력 증강을 위해 진지공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그때 그는 개성 북방의 제12연대 지역에서 진지구축과 함께 진지방어훈련을 계속하면서 북한군의 공격에 대비하였다.
양성호 일병이 진지구축에 열중하고 있던 시기의 상황은 긴박하였다. 북한군의 38도선 도발이 계속되었다. 일촉즉발의 상황은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군의 기습적인 남침이 시작되면서 전면전이 되고 말았다. 양 일병은 즉각 방어전투에 투입되었다. T-34전차를 앞세워 공격을 시작한 북한군은 그날 아침 개성을 점령하고 임진강 방향으로 공격을 확대하였다.
양성호 일병은 임진강 도하 작전에 참전하여 혼신의 힘을 다해 싸웠으나 T-34전차를 앞세운 북한군의 공격에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북한군은 임진강을 도하한 후 문산-서울 축선을 지향하고 있었다. 연대 일부에서는 대전차특공대를 편성하여 육탄공격을 시도하였으나 중과부적이었다.
양 일병은 북한군의 문산 진출을 저지하기 위해 사력을 다해 방어하였다. 죽음의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고 항상 앞장서서 임무를 수행하였다. 최후까지 용감하게 싸우며 북한군의 공격을 방어하던 양성호 일병은 1950년 6월 26일 의정부 부근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양성호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번호(29판-6면-014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의 전사자 명비(010-ㅌ-021)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