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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자
2008.10.09 06:5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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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60
글쓴이
관리자
제목 : [국방일보]다시보는 6·25-<86>건군 주역들의 군사배경
다시보는 6·25 - [군사기획]
<86>건군 주역들의 군사배경
일제강점기 때 軍과 직·간접적 관련

대한민국 국군은 미 군정기에 국방경비대로 태동해 1948년 대한민국 건국과 동시에 독립국가의 정규군으로 출범했다. 하지만 건군주역(建軍主役)들이 참여했던 건군과정은 지난(至難)한 여정의 연속이었다.

8·15 광복 이후 건군에 참여한 대부분의 건군주역들은 일제강점기하 광복군·중국군·일본군·만주군 출신 간부들과 기타 군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일에 종사한 군사경력자(軍事經歷者)다. 그들은 당시 한국의 모든 국민이 그러했듯,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유년과 청장년 시절을 일제가 지배하는 식민지 국민으로의 삶을 강제당했던 ‘불우한 세대(世代)’였다.

일제의 한국 지배는 중국 대륙 및 태평양전쟁을 위한 전시체제하의 군사적 성격 위에서 출발했다. 그렇기에 일본화(日本化)되는 식민지 조국에서 이 땅의 건군주역들이 선택했던 군인의 길도 당시 수많은 식민지하의 조선의 식자층(識者層) 젊은이들이 한번 도전해 볼 수 있는 다양한 직업 중 하나였다. 그들이 군인이 된 배경은 그들의 회고록을 통해 알 수 있다.

즉, 그들은 나라를 되찾기 위해(김홍일·최용덕·이범석 장군), 어릴 때부터 꿈꿨던 군인의 길을 걷기 위해(이성가·유재흥·김정렬 장군), 생계를 위한 직업의 일환으로(신현준 장군), 일본인 학생을 누르기 위한 단순한 경쟁심의 발로에서(이형근 장군), 군인이라는 직업이 자신의 적성에 맞고 주변의 권유에 의해(백선엽 장군), 주변의 지인(知人)이나 친척 또는 스승의 권유에 의해(이종찬·이용문·박범집·채병덕·임부택·장지량·박경원·정래혁 장군), 강제노역으로 끌려가기보다 차라리 군인으로 가는 편이 나아(송요찬·공국진·김윤근 장군), 일본의 강제징집에 의해(김종오·장도영·김웅수·강영훈·한신·백남권 장군), 그리고 미래 독립할 조국의 간성이 되기 위해(정일권·김백일·이한림 장군) 등이었다.

그들은 이러한 연유로 국내 또는 해외로 진출해 군대와 인연을 맺었다. 일제강점기에서 건군 주역들은 각기 다른 지역에서, 이질적이면서 다채로운 군을 통해 군대 경험을 했다.

중국에서는 장개석(蔣介石)의 중국군이나 광복군(光復軍) 또는 일본의 학병(學兵)으로, 만주에서는 만주군(滿洲軍)으로, 국내·일본 그리고 아시아와 태평양 지역에서는 일본군으로, 미주·하와이에서는 광복군·한인 포로로, 심지어는 지구 반대편의 동부유럽에서는 폴란드 군인으로 군대와 인연을 맺었다.

그들은 모두 일제가 지배하는 ‘식민지 공간’을 탈피해 자의든 타의든 간에 새로운 도전적인 삶을 모색했다. 이처럼 그들이 선택했던 군인의 길은 그들의 뜻이 어디에 있든지 일제강점기라는 불가피한 시대적 상황이 빚어낸 식민지 유산의 결과에서 비롯됐다.

일제강점기하 비록 그들이 입고 있는 군복 색깔은 달랐지만, 그들은 오랫동안 같은 문화적 공간에서 생활한 같은 피를 나눈 민족이었다. 8·15 광복 후 건군 주역들이 과거 그들의 군복 색깔에 관계없이 광복된 이 땅 위에 들어서게 될 희망찬 조국의 미래를 생각하며, 건군의 초석이 되고자 군문을 두드렸던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들의 입대 동기는 개개인에 따라 다르겠지만, 한 가지 공통점은 과거의 잘못된 점은 반성하고 조국의 간성(干城)이 되는 것이었다. 그들은 광복된 조국에서 새로 태어날 국가의 군인으로 헌신할 수 있다는 것만을 생각했다. 그들이 광복 이후 건군 대열에 적극 참여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이들 건군 주역들은 6·25전쟁 시 국가가 어려운 시기에 국가수호를 위해 위국헌신(爲國獻身)했다.

<남정옥 군사편찬연구소 책임연구관>

[국방일보-2008.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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