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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20 09: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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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관리자
제목 : [국방일보]국군발달사-<36>국군의 해외파병
[군사기획] - 국군발달사
<36>국군의 해외파병
1965년 베트남에 첫 파병…군 현대화의 토대

베트남 파병은 현대 한국사상 국가 이익과 정책 결정에 따른 해외파병의 첫 사례다.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자유우방과의 유대와 동맹관계를 돈독히 하면서 국가 경제성장의 동력이 됐고, 실전적 경험은 군 현대화와 전력증강, 교리개발의 토대가 됐다. 그 후 1990년대 초 걸프전에 지원군을 파견하고 유엔이 주관하는 평화유지활동(PKO)을 수행하며, 다국적군의 일원으로 동맹국의 대테러전쟁을 지원해 왔다.

국군의 해외파병은 헌법 제5조 1항에 명시된 국제평화유지에 대한 대한민국 정부의 기본 입장과 제60조 2항 국회의 파병 동의, 경우에 따라서는 한미 상호방위조약 제2조의 공동 및 상호원조의 필요, 그 밖에 유엔안보리의 결의 등에 기초해 파병 절차가 실행된다.

베트남 파병은 1964년 미 존슨 대통령의 파병 요청으로 시작돼 65년 3월부터 73년 3월까지 만 8년간에 걸쳐 이뤄졌다. 최초에 이동외과병원과 태권도교관단이 파견됐고 군사원조단(비둘기부대)과 주월사령부를 비롯해 맹호·백마·청룡·십자성·백구·은마 등 전투부대를 포함, 8개 부대에서 연인원 31만2853명의 병력이 투입됐다.

91년 1월 17일, 유엔의 결의(제678호)와 국제사회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이라크가 쿠웨이트 침공으로부터 철군하지 않아 걸프전이 발발했다. 정부는 국제사회와 연대해 1월 23일 국군의료지원단을 파견했는데, 연인원 154명이 사우디아라비아에 주둔하며 활동했고 종전까지 160명의 공군수송단이 추가로 파견돼 지원했다.

그 후 탈냉전 상황에서 국제적으로 지역 분쟁이나 갈등이 증대되자 유엔의 요청에 따라 정부는 93년 7월 소말리아에 250명 규모의 건설공병단을 시작으로 이듬해 3월 18일까지 연인원 516명의 병력을 파병했다. 유엔의 평화유지활동과 분쟁해결 및 재건활동이 활발해지면서 한국군에 대한 기대가 그만큼 컸기 때문이다.

그리고 95년 10월부터 2년간 연인원 600명의 야전공병단이 앙골라에서, 99년 10월부터 2003년 10월까지 연인원 3200여 명에 달하는 상록수부대가 동티모르에서, 94년 9월부터 2006년 5월까지 서부사하라에서는 제23진에 걸친 국군의료지원단이 국제평화군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했다. 그 밖에 94년 인도·파키스탄 정전감시단을 파견한 이래, 그루지야·라이베리아·브룬디·수단·아프가니스탄 등에도 군 옵서버(MO)를 파견해 해당지역의 정전감시와 순찰, 조사, 중재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이 가운데 아프가니스탄에서 전개된 ‘항구적 자유작전’에 다국적군의 일원으로 해군·공군 수송단(해성과 청마) 파병, 2002년부터 연인원 1956명에 달하는 육군의료지원단(동의부대)과 공병부대(다산부대) 파병, 그리고 2003년 ‘이라크 자유작전’에 건설공병지원단(서희부대)과 의료지원단(제마부대) 파병 후에 이를 다시 자이툰부대로 부대 위치를 전환해 2007년 4월 현재까지 연인원 1만6458명이 평화재건활동을 수행한 것은 대테러전쟁 지원 차원에서의 해외파병으로 특기할 만하다.

이렇듯 국군은 현대사에서 베트남 파병 이래 연인원 32만여 명의 병력을 파병해 왔고, 2008년 현재는 연인원 2만511명이 파병업무를 계속 수행하고 있다.

<백기인 군사편찬연구소 책임연구원>

[국방일보-2008.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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