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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09 10: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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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관리자
제목 : [국방일보]국군발달사-<23>병과학교의 교육훈련
[군사기획] - 국군발달사
<23>병과학교의 교육훈련
1946년 6월15일 통신과·통신소 설치

조선경비대에 조선경비사관학교가 창설되고 난 후 바로 각 병과 교육을 위한 병과학교가 창설됐다. 통신학교 설치가 가장 빨랐는데, 이는 군정청이 사관학교 외에 그 어떤 교육기관도 계획하지 않았지만 군 조직 운영에 통신기능이 필수적이었기 때문이다. 1946년 6월 15일 통신과와 통신소가 설치돼 원주·청주·대전 등지에 있는 각 연대와 통신업무를 개시했으며, 47년 1월 20일 진해에 통신교육대를 세워 그해 11월 25일 통신학교로 개칭했다.

그리고 48년 8월 26일 영등포에 육본 소속의 육군통신학교로 거듭났다. 통신학교의 뒤를 이어 군기학교가 설치됐는데, 지금의 헌병학교에 해당하는 곳이다. 군기학교 창설은 47년 8월 20일에 있었다. 그 이전에는 군감대에서 헌병업무를 수행했으며, 부대가 증편되면서 군감대 간부를 양성하기 위해 조선경비사관학교에 군기과를 설치하고, 군기장교와 사병을 선발해 교육을 실시했다.

그리고 48년에는 경기 고양 제1연대 본부 내에 통위부 보병학교를 설치한 것을 비롯해 군악학교, 자동차학교, 중화기와 야포훈련을 위한 제1·2·3 훈련소를 차례로 개설했다. 한편, 조선해안경비대에서는 사관학교 출신만으론 장교의 충원이 모자라 실전 경험이 있는 하사관을 선발해 사관후보생 교육을 실시하는 특별교육대를 운영했다.

48년 6월 25일 설치한 사관후보생 특별교육대는 특과장교의 양성으로 발전해 법무, 경리, 군사, 선박기술, 정훈, 항해, 기관시설, 병기, 통신수로, 기상 등 각종 과목으로 구분해 교육을 실시했다. 또 하사관 교육을 위해 47년 9월 1일 항해교육대를 비롯한 기관, 공작, 통신, 위생, 경리 등 각 교육대를 학교로 승격시키기도 했다.

정부수립 후 조선경비대가 육군으로 개편되고 각 병과가 제정되자 병과간부의 양성이 시급히 요청됐다. 이에 각 병과학교를 창설하고 병과장교의 교관요원 교육을 실시하는 한편, 간부후보생과 행정·기술병과의 양성교육을 실시했다. 그리하여 8월 26일부터 11월 15일 사이에 육군통신학교·포병학교·공병학교 및 수색학교가 차례로 창설되거나 재창설됐으며, 49년에는 육군 군의·병기·헌병·병참·군악·정보·보병·경리학교를 설치했다.

그 외에 병과학교는 아니지만 고급지휘관과 참모 보수교육을 위한 육군참모학교가 49년 7월 1일 서울의 용산에 창설됐다. 초기에 특과학교의 교육이 발전 단계에 이르면서 장병의 보수교육이 필요했고, 특히 주한미군사고문단 측이 장교의 보수교육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육군참모학교는 그해 9월 1일 29명의 졸업자를 배출했고, 50년 5월 8일 제2기생 47명을 입교시켜 교육을 실시하던 중 6·25전쟁이 일어나 폐교했다.

그러나 병과학교는 북한의 기습남침으로 개교 이후 확고한 기반이 이뤄지기 전인 50년 7월 8일 임시 폐교, 육군종합학교에 흡수 통합돼 각 병과의 초급장교를 양성하다 51년 2월 16일 각 병과훈련소, 즉 각 병과학교로 발전해 교육 전환을 했던 것이다. 그 후 육군은 교육발전의 중요성을 감안해 51년 8월 1일 육군교육총감부를 부산에 설치했는데, 그해 11월 1일 광주로 이동했으며 52년 1월 6일 이승만 대통령은 이를 ‘상무대’라 명명했다.

공군은 항공사관학교의 후보생 중심 교육에서 공군 독립 이후 기술교육을 중시하며 비행부대와 기지 실무교육을 실시했으며, 조종사 양성을 위한 2주간의 미국식 군사기본훈련과 비행부대에서의 조종훈련을 시행했다.


<백기인 군사편찬연구소 책임연구원>

[국방일보-2008.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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