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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전 초기 국군의 활약상 재조명 필요하다 | 특별 좌담회-‘6·25 전쟁 연구, 여기까지 왔다’ |
6·25전쟁이 정전으로 마무리된 지 55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전쟁의 진실을 밝혀 가는 과정은 계속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는 군 안팎을 통틀어 최고 수준의 6·25전쟁 전문가들이 포진한 핵심적인 전사연구소다. 군사편찬연구소 연구원들의 목소리를 통해 6·25전쟁 연구의 최신 동향을 들어 본다. 편집자 - 지난달 25일 국내 언론들은 ‘구소련이 미국의 6·25전쟁 참전을 유도했고 중공군 참전을 통해 중국의 국력을 약화시키려 했음을 보여주는 소련 비밀문서가 발견됐다’고 크게 보도했다. 그동안 ‘전쟁 전 소련과 북한은 미국이 참전하지 않을 것이라고 오판했다’는 견해가 일반적이었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의외였다. 전문가로서 이 문서를 어떻게 보나. 양영조 박사(이하 양)=어떤 문서도 충분한 검토 없이 액면 그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 스탈린의 성격을 비유하자면 ‘능구렁이가 몇 마리 들어간 캐릭터’다. 보도처럼 스탈린이 8월 체코 측 당국자에게 그런 발언을 했을 수는 있지만 그 발언이 진실이라는 보장은 없다. 남침 전 소련과 북한이 미국의 참전 가능성을 우려하며 대응 방안에 대해 논의를 많이 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문서를 액면 그대로 믿기는 어렵다. 소련이 유엔 표결에 불참, 미군의 참전을 결과적으로 허용한 것에 대해 동맹국인 동유럽 국가로부터 비난을 받았다. 결국 이 문서는 동유럽을 향한 소련의 변명이라고 볼 여지도 있다. 흥미로운 문서로 생각되지만 스탈린의 의도를 분석해야 진정한 의미를 유추할 수 있다. 남정옥 박사(이하 남)=문서 작성 시점이 8월인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 당시는 중공군이 개입하지 않은 시점이다. 이 상황에서 중공군을 끌어들이려 했다는 문서의 내용은 조금 의문스럽다. 전체 맥락상 소련이 체코 측에 흘리는 역정보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스탈린의 발언은 소련도 동유럽을 중시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수단으로 나온 것으로 보인다. 기존 자료와 다른 돌연변이 성격의 문서라는 점에서 중요하지만 그대로 활용하기에는 조심스럽다. - 이번 문서 발굴 사례에서 보듯이 6·25전쟁에는 아직도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분야도 많은 것 같다. 6·25 연구는 현재 어디까지 진행된 상태인가? 손규석 박사(이하 손)=6·25 연구는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외국 문서 중에 아직 공개되지 않은 것이 많다. 미 국립문서보관소에 남아 있는 북한 노획문서의 분량만 200롤짜리 1000개, 도합 20만 장이다. 여기에 2000년 이후 노획문서가 추가 공개되고 있다. 미국 국가안보회의·중앙정보국·국무부까지 합치면 문서의 양은 천문학적이다. 군사편찬연구소가 국내 어느 기관보다 적극적으로 문서 사본을 조사·영인해 왔지만 여전히 미공개 문서가 많은 것이 현실이다. 양=6·25전쟁 연구가 완전히 끝난 것처럼 이해하는 것은 착각이다. 관련 문서 중 아직 연구자의 손길을 기다리는 자료가 많다. 이 같은 방대한 문서를 조사·연구하는 작업은 개인 차원에서는 진행하기 어렵다. 공식적인 연구소 조직만이 이 같은 연구를 감당할 수 있다. 박동찬 박사(이하 박)=미국의 국립문서보관소에는 미군 부대별 지휘보고서가 남아 있다. 사단별로 대략 20만 장이 넘어 전체적으로는 거의 200만 장에 달한다. 이 또한 각국 연구자들이 아직 연구에 제대로 활용을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남=사실 전사자·부상자·재산 손해 등 각종 통계도 불확실한 점이 많다. 자료마다 서로 다른 수치가 정리되지 못한 채 통용되는 것도 아쉽다. - 1990년대 중반 이후 구소련 비밀자료 공개로 북한의 남침이 객관적으로 확인되는 등 6·25전쟁 연구에 큰 영향을 줬다. 이와 유사한 수준의 북한·중국 자료가 추가 공개될 가능성은 있는지 궁금하다. 양=중국·북한 자료는 아직 공개 안 된 부분이 많다. 중국에서 전쟁사 간행물이 공개되고 있지만 매우 제한적이다. 중국은 체계적인 계획 아래 국익을 고려해 냉정한 판단을 거친 후 제한적으로 자료를 공개한다. 이 점은 소련도 마찬가지다. 가급적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 성격의 문서 위주로 공개해 왔다. 남=북한 사회의 성격상 전쟁의 진실이 담긴 문서는 쉽게 공개될 수 없다. 당분간 큰 기대를 하기 어렵다. - 한때 6·25전쟁이 북침이라는 터무니없는 주장이 대학가를 중심으로 유행한 적이 있다. 이런 잘못된 주장은 어느 정도 불식된 상태지만 여전히 6·25전쟁에 대한 잘못된 상식이 많을 것 같다. 어떤 점을 꼽을 수 있나. 양=북한의 남침으로 전쟁이 시작됐다는 큰 그림은 이제 명확하게 그려졌다. 적어도 학자라면 이 같은 사실에 대해 더 이상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미국이 전쟁을 유도했다는 유도설이나 신수정주의, 우리가 북침했다는 터무니없는 주장 등은 구소련 문서가 공개되면서 설 자리를 완전히 잃었다. 전쟁이 누구에 의해 시작됐느냐는 논쟁은 이제 확실히 종료됐다. 손=군사편찬연구소에서 6·25전쟁사를 새롭게 편찬하는 작업은 잘못된 수정주의 역사관에 종지부를 찍는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연구소의 6·25전쟁사 편찬은 북침설·유도설 같은 잘못된 주장을 배제하고 대한민국의 시각에서 전쟁에 대한 해석을 정립하는 의미가 있다. 남=6·25를 이해할 때 국군의 초기 전투에 대해 너무 가혹하게 비판하는 경우가 있다. 지금까지 정부와 군의 부정적 면모만 너무 부각시킨 측면이 있다. 물론 정부와 군이 전혀 실수하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경험이 부족한 신생군대가 전쟁 초기에 나름대로 지형을 잘 이용, 선전한 측면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더구나 전쟁 중 국군의 집단 투항도 없었으며 부대에서 낙오한 병사들도 살아 있으면 복귀해 다시 싸웠다. 북한 입장에서 개전 초 국군은 힘겨운 상대였을 것이다. 양=중요한 지적을 해주셨다. 개전 초 우리 국군은 굉장히 열악한 조건에서도 나름의 최선을 다해 싸운 사례가 많았다. 전쟁 초기 국군의 역할에 대해 긍정적 평가도 필요하다. 잘 싸운 면도 알아야 한다. 오히려 북한군이 초기 전투 당시 실수가 많았다. 개전 초 북한군이 무적의 군대라는 것도 잘못된 이미지다. 구소련 측 문서를 보면 북한군도 실수가 많았다. 장비는 우리보다 월등했으나 이를 소화한 단계는 아니었다. 더구나 북한군 지휘부의 전술적 이해도도 낮았다. 개전 초기 상황을 놓고 우리 군의 활약상은 과소평가되고, 반대로 북한군은 과대평가된 측면이 있다. 좀 더 균형 있게 재평가해야 한다. - 전쟁·전사 연구가 과연 군에 어떤 실질적 기여를 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 남=크게 보면 전사 연구는 승리할 여건을 평시에 조성하는 것이 목표다. 더 크게는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좀 더 미시적으로 보자면 전쟁사는 전쟁수행 방법의 학습장이라 할 수 있다. 당시 지형을 놓고 전사를 음미해 보면 전술 측면에도 발전 요소가 많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또다시 벌어진다고 가정할 경우 지형상 또다시 재현될 수밖에 없는 성격의 전투 사례도 많다. 연합·합동작전 측면에서 역할 모델로 삼을 만한 전례도 적지 않다. 이런 점을 감안한 연구는 군 교육기관의 전술교육에 직접적으로 응용될 수 있다. 양=군사편찬연구소의 ‘6·25전쟁사’가 많은 군 교육기관에서 교재로 사용된다. 전사 연구는 전쟁수행 방법이나 전술 구사를 위한 논리 개발에 도움이 된다. 연구소의 편찬과정에서도 이런 실용적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편집·내용 구성에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 남=과거의 전투사는 기동·보병 중심의 전투사였다. 하지만 군의 원로나 각군 실무자 사이에서는 군수 등 전투의 다양한 면모를 반영하지 못한 연구는 반쪽의 전투사란 평가가 많았다. 군사편찬연구소의 ‘6·25전쟁사’는 이 점을 고려, 현재 교리에 적합한 전장기능별 분석과 교훈을 반영하려 했다. 손=결과적으로 한국 고유의 전사 서술 스타일을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실무부서의 요구 충족을 위해 하나의 전사 서술 스타일을 만든 셈이다. 새로운 ‘6·25전쟁사’가 가진 중요가치 중 하나다. 남=물론 전훈 평가에 대해서는 지금도 격론이 진행 중이다. 연구소에서 제시한 결론이 최종적인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여전히 추가적인 분석 평가가 필요한 것도 남아 있다. 하지만 토론의 주제를 던져 주는 효과가 있으며 이는 발전의 원동력이 될 것이다. - 우리 군의 장교 양성·보수 과정에서도 반복적으로 전사 관련 교육이 이뤄진다. 하지만 전사가 너무 어렵다는 사람이 적지 않다. 군의 실무 간부들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남=전사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형연구가 첫째다. 지리가 결여되면 안 된다. 그 다음은 피아 전투서열에 대해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그 다음에 기억할 것이 전투의 개요와 경과다. 이런 기초지식을 먼저 갖춘다면 전사가 보다 쉽고 입체적으로 이해될 것이다. 전쟁의 정책이나 목표, 야전군 등 상급 부대의 전략방침을 알고 연구하는 것도 필수적이다. 이렇게 단계적으로 접근할 경우 승패의 원인을 스스로 분석할 기초가 마련될 것이다. 이런 지식을 갖춘다면 이 같은 전술감각은 실무에서도 응용할 수 있으리라 본다. 2008.07.25 사회·정리=김병륜/사진=김태형기자 lyuen@dema.mil.kr |
[국방일보-2008.07.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