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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자
2008.06.25 11: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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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관리자
제목 : [국방일보]국군발달사-<21>6·25전쟁과 남겨진 과제
[군사기획] - 국군발달사
<21>6·25전쟁과 남겨진 과제
세계 유일 분단국 상징으로 남아

6·25전쟁은 현대 한국을 결정지은 원인자이자 미래 한국을 위해 넘어야 할 문지방이다. 결코 ‘잊혀진 전쟁’일 수 없고, 그렇게 돼서도 안 된다. 역사로부터 배우지 않는다면 아무 것도 배울 것이 없다. 전쟁의 기억이나 인식에 차이가 있더라도 역사의 실재에 대한 이해와 성찰은 냉정해야 한다. 전쟁을 예방하고 평화를 만들어 가는 길이 결코 타협적인 역사관의 정립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제 전쟁의 원인을 둘러싼 북침이냐 남침이냐 하는 해묵은 논쟁은 극복돼야 한다. 한때 수정주의의 영향을 받아 ‘남침유도설’이나 ‘북침설’과 같은 인식이 없지 않았으나, 북한의 ‘남침’은 토르쿠노프(A. Torkunov)의 저작 등 러시아 측 자료나 중국 측 공간사에서도 확인되는 사실이다. 전쟁에 대한 이해가 원인론에 국한돼서는 안 되고 보다 광범한 의미와 역사적 지혜를 발견하는 길로 진전돼야 할 것이다.

특히 전쟁의 책임이나 발발 원인에는 변경 불가의 역사적 사실이 존재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6·25전쟁은 제2차 세계대전의 전후처리 과정에서 야기된 열강에 의한 남북 분단, 동서 간의 이념적 대립과 냉전의 심화, 은밀한 공산 측의 공모 즉, 김일성의 주동과 스탈린의 설계, 그리고 모택동의 협력 등 복합적 요인이 작용한 결과였다. 마치 19세기 개항 이후 열강들이 조선을 패권경쟁의 대상으로 삼아 국제적 흥정을 벌인 역사와 다르지 않았다.

19세기 후반 개항을 전후로 국제무대에 첫 발을 내디딘 조선은 만주·한반도를 놓고 격돌한 청·일, 러·일 간의 쟁탈전의 와중에 카스라 - 테프트밀약에서 보듯이 ‘국제적 흥정’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게다가 일제 투쟁의 과정에서 야기된 민족운동의 노선분화는 전후 민족의 운명을 가름하는 단초가 됐다. 독립지사들이 그토록 ‘분열과 교만’을 경계하던 우려가 현실적인 비극으로 귀결됐던 것이다.

민족운동의 이념적 분화가 민족을 위한 길이 아니었음은 명백하다. 6·25전쟁은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관계에 대한 분명한 교훈을 제시한다. ‘의식은 국제적으로, 행동은 민족적으로’라는 명제가 그것이다. 그러나 한국인에게 6·25전쟁은 한국의 현대사 서막을 장식한 민족의 비극이었지만, 한편으로 또 다른 역사를 여는 창이기도 했다.

전후 한국은 불완전하나마 국민통합(nation building)을 향한 국가형성(state building)을 강화시켰다. 일제 강점기에 형성된 ‘기생적 자본주의’를 걷어내고 전후복구와 국가재건 과정을 통해 산업화를 달성하고, 분단 상황에서 민주화를 통해 보편적 민주주의를 실현했다. 그리고 촉진된 사회 유동성을 기반으로 사회를 새롭게 디자인하고 양질의 인적자원을 토대로 생산·고용을 확대하는 기회균등의 사회로 발돋움했다.

그럼에도 전쟁은 인적·물적·정신적으로 엄청난 피해를 유발하면서 사회의 불안정성을 내인화했다. 전쟁은 한반도에 냉전의 상흔을 각인시켰고, 휴전 하에서 비무장지대를 경계로 남북으로 대치하는 군사적 긴장·대립을 상존시켰다.

여전히 한반도는 전 세계에 ‘분쇄된 세계(broken world)’의 상징으로 남아 있으며, 평화를 위협하는 북핵 문제는 국제사회의 ‘뜨거운 감자’다. 과거는 현재의 씨앗이고 현재의 열매가 미래라 했듯이 한국의 현실은 여전히 싫든 좋든 6·25전쟁의 영향이나 인과관계 하에서 규정되고 있다고 하겠다.


<백기인 군사편찬연구소 선임연구원>

[국방일보-2008.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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