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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자
2007.08.27 17:5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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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65
글쓴이
관리자
제목 : [국방일보](논단)리더의 窓-나폴레옹 리더십 거꾸로 읽기
리더의 窓-나폴레옹 리더십 거꾸로 읽기

프랑스는 나폴레옹 전쟁 이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전쟁(보불전쟁, 제 1•2차 세계대전, 베트남전쟁, 그리고 알제리전쟁 등)에서 이겨본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인들이 아직도 낭만과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고 있는 것은 나폴레옹에 대한 자부심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그동안 많은 사람들은 나폴레옹을 이야기할 때마다 그의 천재성과 타고난 리더십만을 거론함으로써 스스로 그로부터 배울 수 있는 교훈을 제한해 왔다. 실제로 우리는 그의 전역(Campaign) 연구를 통해 역사상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그의 빼어난 용병술과 천재성을 목격하게 된다. 심지어는 그가 스페인 전역에서 게릴라전을 목격한 후 ‘전선 없는 전쟁(a war without a front)’이라고 한 사물의 핵심을 찌르는 듯한 예리한 표현에서도 그의 천재적인 통찰력은 발견된다.

그런데 나폴레옹의 위대성은 타고났다기보다 노력의 결과였다. 그가 브리엔느 사관학교 생도시절에 역사, 특히 전쟁사에 관해 엄청난 독서를 했다든지, 또는 전쟁터에서도 수천 권의 책을 수레에 싣고 다녔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져 있다. 한편, 그는 16세 때 소위로 임관한 후 한동안 프랑스군을 이탈해 코르시카에서 프랑스의 지배에 저항하는 독립군을 지휘했다. 그가 게릴라 형태의 보잘 것 없는 자신의 부대를 지휘하던 수년간은 패배와 고난의 연속이었다. 먼 훗날 그가 쟁취한 눈부신 승리와 영광은 사실상 젊은 시절의 패전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피눈물 나는 노력의 결과였던 것이다.

만일 나폴레옹을 단지 천재라고만 치부해 버린다면 우리는 나폴레옹에게서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 오히려 우리는 나폴레옹의 패배와 인간적 결함, 그리고 그의 실수를 통해 한 차원 높은 리더십을 추구할 수 있는 것이다.

이를 살펴보면, 첫째, 우리는 나폴레옹의 리더십을 통해 합리적 사고와 인격적 요소가 천재적 요소를 능가함을 배우게 된다. 그는 인격적으로 모순되고 결함이 많은 인물이었다. 그는 자신의 능력에만 의존했을 뿐, 부하들의 의견을 존중하거나 조직을 통해 합리적으로 부대를 지휘하는 데는 무관심했다. 그의 독단적 지휘방식으로 인해 참모조직은 약화되었으며, 유능한 참모들도 그를 떠났다. 이러한 현상은 당시 적이었던 프러시아군에서 오늘날의 근대적 참모조직이 태동했던 것과 잘 대비된다. 그는 대제국을 이뤘으면서도 그에 걸맞은 통치철학을 정립하지 못했으며, 오직 코르시카식 가족 관념에 사로잡혀 무능한 형과 동생들을 모두 왕 또는 왕비로 만들었다. 그 결과 말년에는 그의 아내인 마리 루이즈를 비롯한 가족들뿐만이 아니라, 부하와 각료들 대부분이 배반함으로써 그의 패망을 재촉했던 것이다.

둘째, 나폴레옹은 지치고 교만해진 나머지 자신의 전술•전략적 창의성과 변화를 끝까지 지속하지 못했다. 그는 20년 동안 전투를 하면서 평범한 사람의 100년에 해당하는 활동을 했다. 그러나 그에게는 영혼을 의지할 종교나 한 폭의 그림에 도취할 수 있는 예술적 취미도 없었다. 그리하여 지친 그의 리더십이 변화와 진화를 멈추었을 때, 그의 승리도 멈췄다.

리더십도 시간에 따라, 적에 따라, 그리고 부하와 제대에 따라 변화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부하에게 “나를 따르라”고 강요하는 데는 익숙하지만, 반대로 부하를 이해하고 눈높이를 맞추는 데는 인색하다. 우리는 주변에서 연대장이 되어서도 대대장 때의 리더십을 고집하거나, 예비역이 되어서도 현역 때의 경험을 금과옥조(金科玉條)로 여기는 경우를 너무나 자주 본다. 때와 장소와 대상이 바뀐 것을 의식하지 못하는 탓이다.

산은 산이로되 이미 옛 산이 아니거늘, 어찌 옛 눈으로만 바라보려 한단 말인가?

<원태재 군사편찬연구소 전쟁사부장>
[ 2007년 08월 07일 ]

[국방일보-2007.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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