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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10 16:0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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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61
글쓴이
관리자
제목 : [국방일보]다시보는 6·25 -<35>인천상륙작전의 전략적 평가와 가치
다시보는 6•25 - [군사기획]
<35>인천상륙작전의 전략적 평가와 가치

최소 희생으로 최대 승리 쟁취


▲인천상륙작전의 전략적 개념의 본질

인천상륙작전은 맥아더 장군이 미군 수뇌부의 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병력 7만5000명과 함정 261척을 동원해 유엔군에 불리했던 낙동강 전세를 일거에 역전시키고 북진의 계기를 이룬 대(大) 우회 해상기동작전이다. 전사가들은 작전의 성공요인으로 맥아더의 군사적 천재성과 대담성, 그리고 해박한 전사지식에서 터득한 전략적 기습을 꼽고 있다.

맥아더는 적의 증원과 보급 루트의 중심지인 서울을 점령하고자 그 관문인 인천에 상륙작전을 감행했다.맥아더의 우회기동과 허를 찌르는 전략적 기습은 시간•공간만 달리 할뿐 영국의 전략가 리델하트(Liddel Hart)나 중국 병법의 대가 손자(孫子)의 전략적 사고와 그 궤를 같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리델하트는 그의 명저 ‘전략론’에서 고대 페르시아 전쟁부터 20세기 중동전쟁까지 30개 전쟁의 280개 전투를 분석하고, 승리의 요결은 직접공격보다 적의 허를 노리고 기동하는 간접접근에 있음을 간파했다. 손자도 그의 ‘손자병법’에서 간접접근과 같은 의미의 ‘우직지계’(迂直之計)를 전승의 요인으로 꼽았다.

우직지계는 “멀리 돌아가는 것이 오히려 빠른 계책”이라는 뜻이나 근본 개념은 적이 미처 예기치 못한 곳으로 나아가되 적이 방비하고 있지 않은 곳을 공격하는 것이다. 리델하트는 손자병법 애독자였고, 그중 우직지계에 심취했다. 이렇게 볼 때 그의 간접접근전략이 어디서 나왔는지는 불 보듯 뻔하다.

동서고금의 전략가 리델하트•손자가 전쟁에서 결정적 승리의 요체로 채택한 간접접근전략은 적의 저항이 가장 적고 적이 전혀 예상하지 않은 장소로 군대를 기동시켜 적의 배후를 차단해 보급과 퇴로를 막고, 적에게 함정에 빠졌다는 극도의 심리적 불안감을 줘 지휘체계를 마비시키는 것이다.

이는 최소한의 희생과 전투로 최대의 승리를 이끌어 내는 데 그 목적이 있다. 맥아더도 인천상륙작전에서 리델하트의 간접접근전략이나 손자의 우직지계의 정수(精髓)를 인천에 적용해 전략가의 면모를 과시했다.

▲인천상륙작전의 전략적 의의

인천의 전략적 기습은 군사적 측면에서 많은 성과를 거뒀다. 첫째, 인천상륙작전은 북한군이 38선에서 낙동강 방어선까지 81일(6월 25~9월 14일)이나 걸렸던 작전을 국군과 유엔군은 낙동강에서 38선까지 불과 15일(9월 15~30일) 만에 돌파했다. 이는 북진의 계기가 됐다.

둘째, 낙동강에서 38선까지 유엔군이 북한군의 강력한 저항을 받으며 진격할 경우 막대한 인명피해가 예상됐다.그런데 인천상륙에서 서울탈환까지 10일간의 단기작전으로 그 작전일수를 3분의 1로 줄이면서 병력 14만 명과 양민 200만 명을 살렸다.

셋째,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아군은 전장공황에 빠져 있던 북한군 포로 약 13만을 획득, 유엔군에 필요한 정보를 적시에 제공했다. 또 인천상륙작전은 제2차 세계대전 후 침체에 빠졌던 미 해병대의 발전에 기여했다.

즉, 교두보 확보시 상륙주정 대신 공격용 헬리콥터 사용이 추진됐으며 교두보에서 자동하선 능력을 갖춘 고속상륙주정 개발을 서두르게 했다.맥아더의 인천상륙은 ‘세기의 도박’이 아닌 동서고금 전략가들의 전략적 사고에 기초를 두고 실시된 위대한 군사작전이었다. 이는 70세의 노장 맥아더가 자유세계와 한국민에게 준 ‘자유수호의 의지이자 상징’이 됐다.

<남정옥 군사편찬연구소 선임연구원>

[국방일보-2007.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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