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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5.02 13:5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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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관리자
제목 : [국방일보]시론-남베트남군 패배의 군사적 교훈
시론-남베트남군 패배의 군사적 교훈

1975년 4월 30일, 북베트남군 전차가 사이공의 대통령궁에 진입하면서 남베트남은 20년 만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당시 남베트남 군사력은 미군이 철수하면서 남겨준 최신장비로 무장해 세계 4위의 공군력 등 100만이 넘는 막강한 전력으로 북베트남의 군대와 결코 비교될 수 없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북쪽의 대공세가 시작되자, 그들은 전투다운 전투도 해보지 못한 채 불과 4개월 만에 최후를 맞이했다. 어떻게 그런 결과가 나올 수 있었던가?그 원인의 첫 번째로 남베트남 주민들의 안보의식과 국가관을 들 수 있다. 당시 남쪽의 많은 지식인들은 공공연하게 북쪽의 호치민을 지지하면서 그가 주장하는 ‘독립과 자유’를 더 큰 이상(理想)으로 간주했다.

남과 북으로 분단된 조국을 통일할 수만 있다면 공산주의나 자본주의는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무장투쟁에 나선 민족해방전선(NLF)을 지지했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 수는 점점 늘어났다. 내 나라를 내가 스스로 지켜야 한다는 확고한 신념을 갖지 못한 국민들의 내부 분열은 미국의 강력한 지원으로도 막을 수가 없었다.

두 번째 남베트남 군대의 안일한 대비태세를 빼놓을 수 없다. 당시 산악과 늪지대에 은거했던 북베트남군과 베트공은 외부의 보급이 없더라도 생존은 물론 장기간의 전투임무를 수행할 수 있었다. 반면 남베트남군은 미군의 전투방식을 답습했다. 그들은 1개 분대의 베트공을 상대하는 데도 미군과 같은 방식의 작전을 수행했다.

먼저 전투기와 포병으로 공격한 후 헬기로 기동해 전과를 확인하는 방식이다. 그들에게 헬기가 없다면 산악지역 기동은 불가능한 것이었다.그 같은 정밀무기 운용을 위해서는 기술적인 운영체계가 필요했지만 남베트남은 그럴 능력이 없었다. 그로 인해 미군이 남겨 준 최신무기들은 얼마 되지 않아 고철로 전락하고 말았다.

현실이 그러했음에도 그들은 자신들에게 적합한 전략전술 연마는 도외시한 채 미군이 넘겨준 장비와 물자만을 의존했다. 가난한 나라가 부자 나라의 전쟁방식을 그대로 답습했던 것이다. 그 결과 최신장비를 가진 남베트남 군대는 게릴라 수준의 공격에도 상대가 되지 못했다.

당시 베트남의 역사와 여건은 한반도와 유사점이 많았다. 동남아시아에서 남베트남이 사라지자 세계의 이목은 우려의 시선으로 한반도를 주시했다. 그러나 그 시절의 한국은 모두가 확고한 안보의식과 한국적 전술전기로 무장해 위기를 극복해 냈다. 유사점이 많았던 두 나라를 멸망하는 나라와 약진하는 신흥강국으로 구분 짓는 결정적인 차이점이었다.

이제 한국과 베트남은 어제의 적대 관계를 벗어나 동남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동반자의 길을 걷고 있다. 베트남과의 교역은 41억2500만 달러(2005년)에 이르며 그곳에 살고 있는 교민도 3만3500여 명이나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2년 전 남베트남군의 패인을 결코 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과거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고 하지 않는가.

[국방일보-2007.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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