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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6.18 14:3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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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관리자
제목 : [국방일보]다시보는 6·25 -<23>김일성의 6·25 초기 작전 분석과 국군의 역할
다시보는 6·25 - [군사기획]
<23>김일성의 6·25 초기 작전 분석과 국군의 역할

북한군 간부 지휘 결함으로 차질


▲북한군의 초기 작전 실패 분석

북한군의 무력남침 기도는 인천상륙작전과 반격작전으로 여지없이 실패로 돌아갔다. 북한군은 중공군 개입과 지원으로 구사일생으로 겨우 구출됐지만 지휘부 내부에는 패전으로 인한 상당한 군사·정치적인 혼란을 겪었다. 이 같은 내부적 혼란 수습을 위해 김일성은 1950년 12월 별오리(만포 북방 3㎞ 지점)에서 조선노동당중앙위원회 제3차 정기대회를 소집했다.

속칭 북한의 별오리 대회는 남침 이후 6개월간의 작전 실패 요인을 결산하고 앞으로의 당면과제를 제시하는 자리였다. 그 내면에는 김일성이 6·25전쟁의 작전 실패 책임을 김책·전우·무정·김일·김열 등에게 전가함으로써 군사·정치적 혼란을 타개하고자 한 것이었다. 이 회의에서 김일성이 지적했던 북한군의 초기 패인을 분석해 봄으로써 국군이 수행한 초기작전 의미와 교훈을 되새겨 볼 수 있었을 것이다.

▲남침 실패의 원인 분석

김일성은 별오리 대회에서 남침 이후 6개월간의 과정을 3단계로 구분해 제1단계 북한군의 진격, 제2단계 북한군의 후퇴, 제3단계 북한군과 중국군의 재반격 시기 등으로 각각 설정했다. 이어 각 시기에 따라 작전 실패 요인을 간부들의 지휘 결함을 비롯한 병참지원·부대규율 취약·패전의식 팽배, 그리고 유격투쟁 미약 등 8가지로 분석해 지적했다.

최초 북한의 남침계획인 소위 ‘선제타격작전계획’은 미군이 참전하기 이전 속전속결로 전쟁을 마무리한다는 것이 핵심이었다. 그러나 북한군은 남침 후 불과 며칠 만에 전혀 예상치 못한 문제에 봉착함으로써 전체 작전에 큰 차질을 빚게 된다. 그것은 북한군 간부들의 지휘 결함으로 인해 주로 야기됐다고 분석됐다. 즉, 국군 제6사단의 선전(춘천~홍천 지역에서 국군이 선전해 적의 진출을 지연시킨 점), 국방군의 유생역량 방치(국군 주력이 대부분 한강선 이남으로 철수해 전투력을 보존한 점), 그리고 미군 참전에 대비한 예비 부대 미확보(해·공군을 필두로 미 지상군이 조기 참전한 점) 등이었다.

더구나 북한군은 미군의 우수한 포병과 항공전력 앞에서도 그저 전투교리를 기계적으로 적용해 지형과 야간을 이용한 전투를 수행하지 못함으로써 전차·병력 등이 치명적인 손실을 입었다는 점이 비판됐다. 낙동강까지 진격한 북한군은 병참선 신장으로 인한 보급품 부족과 그동안의 손실로 이미 공격력이 극도로 떨어진 상황이었다.

결국 북한군은 국군과 유엔군의 공세 이전인 38선 이북으로 무질서하게 분산 퇴각하고 말았으며, 초기 작전에서의 패전책임을 각 단계 및 사안에 따라 분류해 문책했다.

우리 입장에서 김일성이 지적한 북한군의 패전 요인을 다시 분석해 보면 초기 전투에서 국군이 수행한 방어전투와 또 전투력 보존이 북한군의 차후 작전에 결정적 차질을 가져오게 했음을 알 수 있다. 북한군의 기습을 받은 국군이 혼란 속에서 여러 측면에서 작전 실책을 범하기도 했지만, 국가 운명의 풍전등화 상황에서 장병 하나하나가 감투정신을 발휘, 마침내 국가를 수호할 수 있었던 것이다. 초기 방어 전투의 성공은 바로 국군 장병들의 분투였다.

<양영조 군사편찬연구소 전쟁사1팀장>

[국방일보-2007.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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