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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23 21: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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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관리자
제목 : [국방일보]기획-한국군 세계를 가다<33>
<33>다국적군사령부와 한국군협조단(상)
[이라크 치안·재건 위해 안정화작전 수행 / 2011.08.23]

‘이라크 자유작전’(OIF) 초기에 첨단 군사력으로 이라크군을 단숨에 공략하고 조기에 군사작전을 승리로 장식했으나, 사담 후세인 추종세력과 알 카에다(AQI)와 연계한 적대세력(insurgent)의 조직적인 저항으로 피해가 계속 늘어났다. 이에 동맹군은 2004년 6월 효과적인 안정화 작전 수행과 조기 이라크 재건을 위해 다국적군사령부(MNF-I)로 개편했다. 다국적군사령부 내 파병된 한국군협조단과 참모요원들은 다국적군사령부와 군단사령부(MNF/C-I)에서 실질적인 전쟁 경험을 쌓으며 업무협조는 물론 자이툰사단의 활약상을 홍보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2006년 12월 MNF-I사령부를 방문한 김관진 합참의장이 한국군 협조단 장병들과 함께 기념촬영하고 있는 사진
OIF 작전 책임지역 사진(2006.12월 현황)

▶ 다국적군사령부 편성과 동맹국 지원

미국은 주요 전투가 종료된 2003년 5월 1일부터 전후 안정화 작전 지휘를 위해 동맹국 합동군사령부(CJTF-7)를 창설했다.

최초 CJTF-7은 동맹국 지상구성군사령부(CFLCC)를 모체로 해 편성됐으나 6월 15일부터 미 제5군단을 모체로 해 개편됐고, 바그다드 시내로 사령부를 이동해 본격적인 안정화작전을 수행했다. CJTF-7은 동맹국임시통치기구(CPA)의 ‘이라크 국가재건’이라는 명제의 군사적 분야를 지원하기 위해 6개의 전투사단과 군수지원 및 전투근무지원부대 등으로 구성됐다.

이라크 임시정부가 수립되면서 CJTF-7은 2004년 6월 28일부로 이라크 다국적군사령부(MNF-I)로 개편됐다.

새로 편성된 MNF-I는 미국의 중부사령부(CENTCOM) 통제하에 이라크 내 치안과 안정, 통합 그리고 재건과 번영을 위해 이라크 임시정부와 협력 파트너십을 유지하며 임무를 수행했다.

MNF-I사령부는 미군 대장의 지휘하에 전투를 담당하는 이라크 다국적군단(MNC-I), 이라크 치안군(ISF:Iraqi Security Forces) 양성을 책임지는 다국적군 치안전환사령부(MNSTC-I), 이라크 재건담당부대(GRD) 등으로 편성됐다. 또한 참모부는 전략기획평가, 전략작전, 정보, 인사군수, 정보통신, 동맹군참모부 등 7개의 참모부 및 수개의 실로 구성됐다. 25∼30개 국가로 구성된 다국적군은 통상 15만 명을 유지했다.

핵심 전투부대인 다국적군단사령부(MNC-I)는 효과적인 군사작전 수행을 위해 6개의 사단과 12개의 직할부대로 구성됐다. 사단은 지역별로 배치돼 북부지역의 MND-N, 수도 바그다드 지역의 MND-B, 서부지역의 MND-W는 미국이, 동남부 지역의 MND-SE는 영국이, 중남부 지역의 MND-CS는 폴란드가, 북동부의 MND-NE는 한국이 담당했다. 3명의 부사령관은 미국과 영국 외에 1명은 이탈리아ㆍ캐나다 등 동맹국 출신으로 임명했다. 참모부는 10개의 참모부로 구성됐다.

동맹국의 지원은 다양했다. 영국ㆍ호주처럼 전투 병력을 최초부터 제공한 국가, 일본이나 싱가포르처럼 항공자원만 제공한 국가, 스페인처럼 국내 사정으로 도중에 철수한 국가, 조지아처럼 추가병력을 증원시킨 국가도 있었다.

▶ 한국군협조단과 사령부 참모요원 활동

한국 정부는 이라크 파병이 결정되자 쿠웨이트에 있는 CJTF-7 사령부에 한국군협조단 3명과 참모요원 7명을 파병했다. 협조단(단장 정광춘 대령)은 어려운 여건하에서 서희·제마부대의 파병지역 선정과 미군과의 업무협조 등 파병부대의 임무수행을 위한 산파역을 수행했다.

자이툰부대가 파병되면서 한국군협조단의 위상이 달라졌다. 정부는 협조단 6명과 참모요원 20여 명을 6개월 주기로 MNF-I 사령부 내 파병했다. 대령을 단장으로 한 협조단은 사령부 내 정책 및 전략 변화, 주요 작전상황과 동맹군의 자료를 수집해 합동참모본부에 보고하고 자이툰부대와의 관련업무 협조 및 활약상을 홍보했다. MNF-I 및 MNC-I 사령부에 보직된 참모요원들은 참모부에서 성실하게 임무를 수행하며 민간외교관의 역할을 감당했다. MNF-I 사령부 내 종합정보작전상황실(CIOC)에 파견된 자이툰 사단의 연락장교들은 24시간 MNF-I 사령부의 주요상황을 모니터하며 사단에 보고했다. 김국환 육군준장은 2006년 4월부터 1년 동안 MNF-I 사령부의 민사작전처장으로 보직돼 자이툰부대의 민사작전 노하우를 전 동맹군에게 전파하는 데 기여했다.

▶ 단계화된 안정화 작전

미국의 대이라크 전략은 이라크 해방을 시작으로 후세인 정권을 붕괴시킨 이후에 이라크가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성장하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MNF-I 사령부는 조기 치안확보와 이라크 재건을 위해 해방으로부터 자립에 이르는 로드맵(road map)을 기초로 치안ㆍ화합ㆍ재건 등으로 세분화된 전역계획을 제시했다.

사령부는 치안 유지를 위해 이라크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담 후세인 추종세력(Saddamists)과 적대세력들을 격멸했다. 동시에 민병대나 불법 무장 세력들이 제도권으로 통합될 수 있도록 DDR(Disarmament, Demobilization and Reintegration)을 추진했다. DDR는 불법 무장 세력들로 하여금 무장해제 및 동원해제의 과정을 거쳐 정상적인 사회인으로 재통합시키는 프로그램이다. 초기에는 사담 추종세력이 적대세력의 주력이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후세인 정부 군대에서 해산된 40만 명의 군인들이 생계보장이 안 되자 대부분 민병대나 반정부 세력으로 돌아섰다. 일부는 알 카에다와 협력해 동맹군을 공격하거나 재건 중인 시설물을 무차별하게 공격했다. 따라서 DDR를 통해 이들을 제도권으로 통합시키려 한 것이다.

이라크 안정에 필수적인 이라크 정부의 치안전력(ISF)은 군과 경찰로 구분됐다. 다국적군 치안전환사령부(MNSTC-I)의 지원하에 지속적으로 노력한 결과 2006년 말에는 25만여 명, 지상군 8개 사단이 창설됐고, 군의 작전통제권은 2006년 9월 이라크 합동참모본부로 이양됐다. 2011년 3월에는 치안전력 58만 명(경찰 38만 명, 군 20만 명)이 양성돼 지역별로 치안을 책임지고 있다. 그러나 이라크군은 지상군 위주로 편성(지상군 13개 사단, 공군 5개의 헬기 대대)돼 있으며 대대급 독립작전이 가능한 수준이다.

▶ 새로운 정부 탄생과 화합 위한 노력

이라크 정부는 국민과 정치권의 화합과 통합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2004년 6월 이라크임시정부(ITG)가 수립됐고, 2005년 12월 의회선거를 실시한 후 2006년 4월 신정부가 구성됐다. 신임 말리키(Maliki) 총리는 수니파의 정치 참여를 유도하면서 종파와 정파를 고려한 내각을 우선적으로 구성했다. 초기 구성된 내각은 안배 성격이 농후해 비전문가들이 상당수 입각했고 향후 국정 운영에 걸림돌이 됐다. 더욱이 알 사드르(Muqdata al Sadr)와 연계된 무장단체 마흐디군(JAM)이 정부기관에 요직을 차지하고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정상적인 의정활동이 많은 제한을 받고 있다.

안정화작전을 통해 2008년까지 이라크를 정상적인 국가로 만들려는 미국의 노력이 지연되면서 사담 후세인 독재로부터 해방됐다고 동맹군을 반기며 지지했던 이라크 국민들마저 등을 돌리면서 민사작전에 많은 어려움이 가중됐다. 또한 투자를 하려던 외국 기업과 투자자들도 기반시설이 수시로 파괴되고 자살폭탄 공격으로 치안 불안정이 지속되면서 투자를 기피하게 됐다.

<장삼열 군사편찬연구소 국방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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