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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08 14: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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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제목 : [국방일보]기획-한국군 세계를 가다<42>인도-그루지야 정전감시단
<42>인도-그루지야 정전감시단
[카슈미르 고원서 `평화의 씨' 뿌렸다 코카서스 산맥서 / 2011.11.08 ]

 

유엔 깃발을 단 차량이 한국군 장교를 포함한 정전감시단 요원을 태우고 천길 낭떠러지 카라코룸 하이웨이를 따라 가고 있다. 1993년 소말리아 상록수부대 파견을 시작으로 유엔 평화유지활동에 첫걸음을 내디딘 이듬해, 개인 단위 파견이 시작됐다. 임무 수행에 대한 장벽은 높았으나 곧 도전정신으로 극복하면서 올해까지 무려 17년 동안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흑해 연안의 코카서스 산맥 동남쪽 그루지야에 손길이 이어져 2009년까지 15년 간 총 85명의 장교가 임무를 수행했다. 이들이 곧 분쟁 지역의 가장 위험한 지역에서 평화유지활동을 수행하는 평화의 파수꾼(Peace Eye)이다. 이러한 경험이 오늘날 한국군의 국제평화유지활동이 전 세계로 뻗어가는 바탕이자 촉매제가 됐다.

감시단이 인도-파키스탄 분쟁지역인 카슈미르의 험준한 산악지역을 정찰하고 있는 사진
그루지야와 압하지아의 분쟁지역

 ■ 카슈미르 분쟁과 주(駐)인도·파키스탄 정전감시단(UNMOGIP)

 힌두교와 이슬람교의 첨예한 갈등으로 카슈미르 고원은 동서로 분리되어 통제선을 중심으로 포격과 테러로 점철되어 있다. 인도와 파키스탄은 이미 3차례의 대규모 전쟁을 치렀고 핵무기와 장거리 미사일로 대립하고 있다. 양국의 평화를 위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2008년 11월 말 인도 경제 수도 뭄바이에서 발생한 테러로 170여 명이 사망하고 300여 명이 부상당했다. 이 사건은 카슈미르에서 주로 활동하는 파키스탄 지하드 단체 ‘라슈카르에타이바’가 테러 배후로 지목되면서 양국의 관계는 더욱 악화됐다. 카슈미르 비극은 1947년 영국으로부터 각각 분리되면서 시작됐다.

 ▲ 카슈미르 분쟁과 정전감시단 파견

 독립 당시 카슈미르에는 무슬림이 대부분이었으나 힌두계 마흐라자가 인도 편입을 결정하고 말았다. 그해 10월 카슈미르 이슬람 세력이 파키스탄의 지원 아래 인도지역 스리나가르 점령을 시도하자, 인도가 군대를 파견해 제1차 인도-파키스탄 전쟁이 시작됐다. 엄청난 사상자가 발생하고 1948년 정전 합의가 이뤄져 현재의 통제선(Line of Control)이 만들어졌다. 유엔은 주(駐)인도ㆍ파키스탄 정전감시단(UN Military Observer Group in India and Pakistan)을 전개시켰다. 1964년 파키스탄이 인도령 카슈미르를 다시 공격하면서 제2차 인도-파키스탄 전쟁이 발발했다. 중국이 파키스탄을 지원했고, 소련의 중재로 1966년 1월에 전쟁이 끝났다. 5년 뒤 1971년 파키스탄 내분으로 방글라데시가 독립하는 과정에서 제3차 전쟁이 발발해 1년 동안 계속됐고, 그때 지금의 통제선이 확정됐다.

유엔은 다시 UNMOGIP을 증강하여 카슈미르 지역의 정전협정 준수 여부를 감시하고 평화정착을 중재했다. 이때 한국군은 1993년 소말리아 상록수 부대, 1994년 서부사하라 국군의료지원단, 그루지야 정전감시단에 파병했다.

 ▲ 한국군, 카슈미르 안정에 기여하다

 UNMOGIP 파견국은 8개국 44명인데, 한국군은 가장 많은 인원인 9명을 파견하고 있다. 통제선을 연하여 인도지역에는 델리와 스리나가 등 5개소, 파키스탄 지역은 이슬라마바드와 길깃 등 7개소가 있다. 각 초소에 2∼3명 단위로 편성된 감시단은 정전 위반 행위에 대한 조사활동(Investigation)ㆍ도로정찰(Road Rec.)ㆍ관측소 운용(OP)을 실시한다. 그리고 현지부대 방문(Field Trip)ㆍ인접초소 방문(Field Visit)을 통해 통제선 일대 상황감시와 정보수집 및 유대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작전 활동은 지역에 따라 수백㎞를 이동해야 하고, 열악한 교통망은 늘 위험이 상존한다. 또한 파키스탄은 최근의 아프간 전쟁의 여파로 폭탄테러가 빈번하고, 인도 지역은 분리 독립단체의 테러와 시위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이러한 악조건에서도 한국군 장교단의 헌신적인 노력의 결과 1996년에 안충준 장군이 단장, 김문화 장군이 부단장과 2008년 단장을 역임했다.

 ■ 그루지야 분쟁과 주(駐)그루지야 정전감시단(UNOMIG)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를 이루는 코카서스 산맥 지역은 50여 개 민족 약 2000만 명이 섞여 살고 있어 민족ㆍ언어ㆍ종교의 전시장으로 불린다. 1991년 소련이 해체된 이후 그루지야 내 압하지아와 남오세티아의 분쟁은 러시아 간 전쟁으로 이어졌다. 한국군은 1994년 10월부터 2009년 6월까지 81명의 장교가 파견되어 임무를 수행했다.

 ▲ 압하지아 분리독립 운동과 정전감시단 파견

 1931년 러시아 스탈린에 의해 그루지야에 강제 합병된 압하지아는 1990년 8월 독립을 선언했다. 이에 그루지야는 1992년 8월 압하지아를 공격했고 많은 난민이 발생했다. 1993년 7월 그루지야와 압하지아는 인구리 강을 연하여 휴전했고, 유엔은 주(駐)그루지야 정전감시단(UN Observer Mission in Georgia)을 전개시켰다. 그러나 다시 분쟁이 발발했고 1994년 ‘모스크바 정전협정’ 체결로 독립국가연합 평화유지군(CIS PKF) 5개 대대 병력이 투입됐다. UNOMIG 본부는 압하지아의 수도 수쿠미, 2개의 지역본부는 압하지아의 갈리와 그루지야의 죽디디, 수도 트빌리시에는 UNOMIG 연락사무소가 위치했다.

 2008년 8월 그루지야가 자국 내 친(親)러시아계 자치공화국인 남오세티아를 기습 공격하자 러시아가 곧 반격에 나섰다. 결국 남오세티아와 압하지아가 자치공화국 독립을 선포하고, 죽디디 지역에서 평화유지군 임무를 수행했던 러시아군은 압하지아로 이동했다. 그리고 2009년 6월 UN 임무연장에 대해 러시아가 반대함에 따라 16년 동안의 유엔평화유지 노력은 아쉬운 종결을 맞이했다. 현재 이 지역에는 UNOMIG를 대체해 EUMM(유럽연합 소속 감시단)이 파견돼 있다.

 ▲ 한국군, 코카서스 평화를 기원하다

 그루지야는 유엔정전감시단이 활동하는 지역 중에서도 어렵고 힘든 지역으로 손꼽힌다. UNOMIG 임무지역 중 가장 민감한 지역인 고도리 계곡 정찰팀에는 늘 한국군이 활동했다. 정찰 간 폭탄테러를 직접 경험하고 지뢰 탐지 및 제거, 총격 및 납치 사건의 조사 등을 통해 전쟁의 참혹함과 잔인한 현장을 직접 목격했다. 최대 32개국 136명으로 구성된 정전감시단 요원 간의 긴밀한 작전 협조는, 이후 수행했던 한국군의 다국적군 평화유지활동과 작전에 기여했다. 그리고 이때 활동했던 많은 장교들이 유엔평화유지사무국(UN DPKO) 등 국제기구에 진출하여 탁월한 역량을 발휘하고 있다.

 카슈미르 고원과 코카서스 산맥 일대의 분쟁 현장은 외적으로는 강대국들의 첨예한 이해관계가 충돌하고, 내적으로는 인종ㆍ종교 등 다양한 요인에 의해 복잡하게 뒤얽혀 있다. 여기에 파견된 한국군은 궂은 어려움 속에서 평화정착을 위해 헌신하고 있다. 이러한 숨은 노력이 곧 국제평화유지를 한 부분을 차지하며, 지구촌 곳곳에 평화의 싹을 틔우고 있는 것이다.

<오홍국 군사편찬연구소 해외파병사 연구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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