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동아시아 3국 ‘군사 근대화’ 엇갈린 행보
韓·中 ‘뒷걸음’국난 극복사 전통적 관념 못벗고 배타적 대응 제국주의에 굴복 식민지로 전락 日本 ‘잰걸음’ 정치체계 근대화·산업혁명 이뤄
서양제국에 맞서는 군사력 확보 / 2012.08.01
19세기 중엽 이양선(異樣船)의 출현으로 시작된 서구의 충격(western impact)은 동아시아 사회에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했다. 그러나
조선과 중국은 전통적인 관념 속에서 배타적 대응을 한 반면, 일본은 신속하게 대응했다. 근대화에 성공한 일본은 조선을 겨냥하는 또 하나의
칼날이 됐다.
조선의 군사적 전통
조선 말에 이르러 삼정의 문란으로 국정은 파탄지경이었다. 군사적으로 조선은 개국 시부터 오위제에 기초해 궁시와 대형총통 등 장병기(長兵器) 위주의 무기체계를 운용했다. 그랬기에 임란 때 대륙의 위협에 대처하는 소위 ‘육방(陸防)’ 전법으로는 창·검술과 조총을 긴밀히 연결해 살상력을 높인 일본군을 대적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그래서 명나라의 척계광 전법(기효신서)을 수용하는 한편, 조선 초의 진관체제 복구와 함께 지방군 강화에 힘썼다. 중앙군인 훈련도감과 지방군으로서 속오군제가 이때 시행됐다.
조선 후기에 와서 조선의 국방은 민간의 ‘향촌방위’에 무게가 실렸다. 중앙군은 왕권 강화나 자파 세력의 물리적 기반으로서만 존재했고, 속오군도 본래의 군사적 기능을 상실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향촌방위의 전략은 왕조의 허약한 국방체제가 불러온 산물이었지만 향촌조직과 군사조직을 일체화한 국민총력전체제를 지향한 것이었다.
일본의 개항, 산업화 그리고 제국주의화
조선 정부는 뒤늦게 군사개혁에 착수했다. 하지만 지지부진했다. 한반도에 식민화를 강요한 일본의 ‘군사 근대화’의 양상과 사뭇 달랐다. 일본은 미국 페리 제독의 함포 외교에 굴복해 수호조약(1854)을 체결한 뒤 급속하게 서구화의 길로 나섰다. 그리고 1868년 메이지유신(明治維新)이라는 ‘위로부터의 변혁’을 통해 천황제 중심의 근대적 국가체제를 이룩했다. 그런 상황에서 군부가 실권을 독점했고, 1880년대 중반 산업혁명을 완성하며 군사팽창노선을 통해 이른바 ‘대응적 제국주의(responsive imperialism)’로 변모해 갔다.
일본의 제국주의화는 민권주의자들에 의한 ‘반대와 저항’을 극복하고 국가자본에 의한 힘을 기반으로 하는 군국주의를 추동했다. 미국을 비롯한 열강과 개항을 통해 맺은 ‘불평등조약’에 대한 개정운동이 뒤따랐다. 1854년부터 69년까지 14개국과 맺은 여러 조약 가운데 편파적인 치외법권과 관세협정의 철폐를 도모한 것이다. 근대적인 군대의 건설을 위해 징병제를 실시(1873)해 국민개병주의를 구현하고, 사단편제에 의한 군 지휘체계를 갖췄다. ‘야마가타 아리토모(山顯有朋) 군비의견서’에서 볼 수 있듯이, 일본은 1889년 대륙작전을 위한 전투편성을 완료했다. 이듬해 야마가타는 ‘이익선에서 주권선으로’를 선언하며 대륙침략노선을 공식화했다.
일본의 근대, 군국주의의 길로 향하다
제국주의적 팽창과정에서, 일본이 개항 초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신정부의 ‘병제(兵制) 통일’에 박차를 가했던 상황은 흥미롭다. 무엇보다 군제 통일의 기초를 병기의 통일에서 찾고, 영국제 엔빌 소총을 개조해 1880년 13년식 무라다(村田) 총을 개발했다. 육군 공창으로는 1872년 소총제조공장을 개업한 이후 74년 화약제조소와 83년 총포제조소를 열었으며, 해군공창에서는 76년 목조군함 제조와 90년대 함정을 건조하는 수준에 도달했다.
일본의 군수산업은 국가자본으로서 군비 확장계획의 토대 위에서 크게 성장했다. 마스카타(松方) 내각의 ‘군비확장 8개년 계획’으로 육군 병력이 1883~9년까지 4만3142명에서 7만5791명이 됐고, 예비 병력을 합해 24만3484명으로 급격히 증가했다. 게다가 1888년 육군사단편성으로 ‘대륙침략을 위한 준비’에 박차를 가하며 각지에 본격적인 포대 건축을 개시했다. 해군 전력도 32척의 신함 건조와 오·사세보의 두 진수부(鎭守府)를 개설하는 등 급속하게 증강됐다.
일본은 서양 병제의 변화과정을 따라잡았다. 1894년 청일전쟁에서 일본군은 근대 전법의 전형이라고 할 밀집대형과 산개대형의 동시 구사를 성취했다. 대륙침략에 앞장선 ‘대륙전투단’은 서양식 근대 군의 막강한 무기체계와 전략전술을 그대로 재현했다.
군사적 근대화의 엇갈림
제도적으로나 전략전술 차원에서 근대이행기의 중국이나 조선은 전통적인 군사적 발전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 20세기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제국주의의 국제 현실에서 결국 조선과 중국은 식민지나 반(半)식민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러나 일본은 근대의 정치체제를 만들고 재빠르게 산업혁명을 달성해 서양 제국주의에 맞서는 군사력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그들은 ‘강하고 집중적인 화력과 신속한 기동성’을 보장하는 군대를 출범시켰다. 그것이 ‘올바른 지향’이었느냐를 따지기에 앞서, 민권주의자들의 반대를 극복하며 제국주의 각축에서 살아남아 또 하나의 패권국가로 변신했던 것이 엄연한 일본 근대사의 현실이었다.
<백기인 군사편찬연구소 책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