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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자
2006.10.31 13: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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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75
글쓴이
관리자
제목 : [국방일보]베트남 정글의 영웅들-(38)오인섭 중위
베트남 정글의 영웅들 - [군사기획]
[38] 오인섭 중위
"적 퇴로 차단공신 닌호아 전투영웅"

9사단 29연대 8중대 3소대장 오인섭 중위는 두 차례의 닌호아 전투에서 수훈을 세운 영웅이다. 닌호아 전투는 1967년 10월 24일, 2개 대대의 베트콩이 9사단 사령부 남쪽 3㎞ 지점 닌호아 시가지에 침투하면서 시작됐다. 한국군 사단사령부 코밑 시가지를 점령한 베트콩의 기도는 대담한 도발이었다.

그에 앞서 한국군은 4월 18일 수도사단과 9사단의 작전 지역을 연결하는 오작교작전에 성공하면서 적극적으로 평정 지역을 확대하고 있었다. 베트콩은 위기 의식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 주민들에게 자신들의 건재를 알릴 수 있는 획기적인 조치가 필요했다. 그들이 한국군과 정면 대결을 불사하며 과감하게 닌호아 시가지를 점령한 배경이었다.

사단은 즉각 29연대 2·3대대를 출동시켰다. 그러나 주민들을 인질로 잡고 있는 베트콩에 포격을 가해 많은 민간인 피해가 발생한다면 그들의 기도에 말려드는 것이었다. 고심을 거듭하던 한국군 지휘부는 포병 지원 없이 기동부대 자체 화력만으로 그들을 소탕키로 했다. 그로 인해 무지원 하에 개활지를 통과하던 아군의 공격은 막대한 피해와 함께 저지되고 말았다.

중대의 공격이 저지되자 오중위는 포복으로 적 진지에 접근해 수류탄으로 적의 전초진지를 제압했다. 소대장의 활약을 지켜본 소대원들이 일제히 돌격을 감행하자 당황한 적은 도주하려 했다. 오중위가 3분대로 그들의 후방을 차단하자 퇴로를 잃은 적은 발악적인 저항으로 맞섰다. 소대의 진출은 또다시 저지됐다.

이번에도 오중위는 선두에서 적의 자동소총 진지를 향해 접근했다. 그가 30m 앞까지 접근하자 적은 수류탄을 날렸다. 오중위가 재빨리 집어 다시 적진에 던지자 ‘꽝’ 하는 소리와 함께 4명의 시체가 공중으로 솟았다.

그러자 나머지 적이 도주하기 시작했다. 오중위는 중대에 화력을 요청하며 그들을 추격했다. 그때 갑자기 적의 사격이 오중위에게 집중되면서 그는 쓰러지고 말았다. 뒤따르던 손정웅 일병이 대응사격을 가하며 달려가 소대장을 안아 일으켰다. 그때 기적이 발생했다. 그가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일어선 것이다. 그의 방탄조끼를 맞힌 총탄 5발의 반동에 의해 쓰러진 것뿐이었다. 전투복 팔소매 등에도 무수한 총탄 자국이 남아 있었으나 모두 빗나간 것이었다.

“고맙다. 자세를 낮춰라”는 오중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옆에 있던 손일병이 쓰러졌다. 분노한 오중위가 M16을 자동으로 사격하며 수류탄을 던지자 적은 도주에 급급했다. 급거 출동한 무장 헬기가 그들을 강타했다. 소대는 그곳에서 14명의 적을 사살했다. 그후 연대의 작전은 28일까지 계속되면서 100여 명의 적을 사살했지만 그들의 주력은 도주하고 말았다. 반면 아군은 47명이 전사하는 등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자신감을 갖게 된 적은 불과 2주 후인 11월 6일 1개 대대 규모로 또다시 닌호아 시가지를 점령했다. 이번에도 29연대 2·3대대가 출동했다. 그때 선두에서 공격을 독려하던 2대대장 송서규 중령이 전사했다. 밤이 되면서 매복으로 전환한 오중위는 소대 정면으로 접근하던 1개 소대 규모의 적을 유인, 25명을 사살했다. 다음날까지 계속된 작전에서 연대는 140명을 사살했지만 아군도 38명이 전사했다. 전투 후 정부는 고 송서규 중령에게 태극무공훈장을 추서했으며, 오중위에게는 을지무공훈장을 수여해 그들의 용맹과 공적을 치하했다.

<최용호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연구원>

[국방일보-2006.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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