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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자
2006.09.07 13: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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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63
글쓴이
관리자
제목 : [국방일보]베트남 정글의 영웅들-(34)고 조정남 상병
베트남 정글의 영웅들 - [군사기획]
[34] 고 조정남 상병
"최후 순간 적 3명과 함께 수류탄 자폭"

고 조정남 상병은 임진왜란 때 진주 촉석루에서 적장을 안고 자결한 논개(論介)와 비교되는 영웅이다. 제2해병여단 11중대가 짜빈동 기지를 공격한 1개 연대 규모의 북베트남군을 물리칠 수 있었던 것은 3소대 1분대 소총수였던 조정남 일병과 같은 용맹스러운 해병용사들의 혈전이 있었기 때문이다.당시 적은 사전 치밀한 정찰과 준비를 거쳐 압도적인 병력으로 11중대 기지를 쓸어 버리려 했다. 그들 앞에 있는 11중대 기지는 그야말로 커다란 파도 앞에 놓인 조그마한 섬에 불과했다.

그러나 조일병과 같은 해병 용사들의 활약이 있어 조그마한 섬이 모래성이 아닌 단단한 바위섬이었음을 증명하게 된 것이다.짜빈동 기지에 대한 적의 공격은 1967년 2월 14일 11시 20분쯤, 조일병이 배치된 3소대 정면 외곽 철조망을 폭파시키면서 시작됐다. 아군의 즉각 반격이 시작되자 적은 숲 속으로 도주했다. 그들이 물러간 후 조일병은 도성룡 일병과 한조가 돼 청음초로 근무했다. 긴장된 밤을 보내고 있던 15일 4시 10분쯤, 베트남인들이 풍기는 특유의 체취와 함께 풀을 스치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렸다.

그들이 중대 본부에 상황을 보고한 얼마 후 대규모 부대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소대는 중대장의 지시에 따라 그들을 최대한 가까이 접근시킨 후 조명탄을 쏘면서 기습사격을 시작했다. 그때부터 피아 간의 치열한 포격전이 시작됐다. 그러나 적의 기세는 맹렬했다. 소대의 용전이 계속됐지만 소대 정면에 2개 대대 규모의 집중 공격이 계속되자 소대 방어선은 30분 만에 무너지기 시작했다.그때부터 내부로 진입한 적과 해병용사의 육박전이 시작됐다.

압도적으로 많은 병력을 가진 그들은 해병용사의 용맹스러운 백병전에 많은 사상자를 내면서도 “따이한, 라이 라이”(한국군 이리와! 이리와!)라고 외치며 동료들의 시체를 밟고 전진을 계속했다. 3소대 지역은 피아의 좌충우돌로 순식간에 아비규환의 난장판으로 변했다. 그 같은 상황에서도 대원들은 용전분투하며 밀려오는 적을 닥치는대로 사살했다. 그 와중에 전사하거나 부상당한 용사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때 조일병은 착검된 소총으로 밀려드는 적과 백병전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의 총검에 넘어진 적이 몇 명인지 셀 수조차 없었다. 적들은 그를 향해 무더기로 달려들었다. 그 같은 상황에서는 두려운 마음을 가질 여유도 없었다. 오로지 적을 물리쳐야 한다는 적개심뿐이었다. 그러나 어찌하랴. 적이 던진 수류탄이 바로 옆에서 폭발하면서 그는 전신에 파편상을 입고 말았다. 온몸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지만 그는 그대로 주저앉지 않았다. 다시 일어서 소총을 잡은 그는 적을 향해 찔렀다. 그러나 출혈이 계속되면서 전신에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최후를 실감했다.

그때 3명의 적이 교통호를 따라 접근해 오자 그는 수류탄을 터뜨려 그들과 함께 폭사했다. 자신의 소총도 폭발과 함께 파괴돼 적이 사용할 수 없게 됐다.1개 중대가 1개 연대의 공격을 막아 내는 전투 현장에서 있었던 조일병과 같은 해병용사들의 투혼은 한·미·베트남 3국의 언론에 크게 보도됐다. 승리의 견인차가 된 그들의 투혼에 찬사를 보냈다. 정부는 조일병의 용맹과 투지를 높이 평가해 1계급 특진과 함께 을지무공훈장을 추서했다. 또 전쟁기념관은 그를 호국인물로 선정해 추모하고 있다.

<최용호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연구원>

[국방일보-2006.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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