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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7.20 20: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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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관리자
제목 : 여성이 참여한 3·1 독립운동 (국방일보)



제목 : 여성이 참여한 3·1 독립운동

저자 : 군사사부 연구원 정해은

수록 : 국방일보,2003.03.05


"나는 국토를 찾고자 이 몸을 바쳤노라/나는 겨레를 살리려 생명을 바쳤노라/나는 조국을 광복하고자 세상일을 잊었노나/나의 뒤의 일을 겨레에게 맡기노라/너는 나를 따라 국가와 겨레를 지키라"

읽으면 읽을수록 가슴 밑바닥에서 뭉클한 감정이 일어나는 이 글은 신흥무관학교 졸업생과 재학생들로 조직된 독립결사대인 ''신흥학우단''이 조국 광복의 신념을 잃지 않기 위해 매일 낭독한 서약문이다. 조국 독립이 얼마나 소중하기에 이들은 자신의 생명을 초개처럼 여기는 이런 맹세를 했을까?

이에 대해 백범 김구 선생은 "…왜 그런고 하면 독립한 제 나라의 빈천이 남의 밑에 사는 부귀보다 기쁘고 영광스럽고 희망이 많기 때문이다.…왜 그런고 하면 둘 이상이 합하여서 하나가 되자면 하나는 높고 하나는 낮아서 하나는 위에서 명령하고 하나는 밑에서 복종해야 하기 때문이다."라고 명쾌하게 답했다.
독립 국가란 민(民)으로 하여금 인간다운 삶을 약속하는 가장 근본 토대였기에 수많은 애국지사들은 모든 것을 뒤로 한 채 이 길로 매진한 것이다. 그리고 독립을 위한 가시밭길에는 여성들도 동참하고 있었다. 특히 1919년 3월의 독립만세운동에서 보여준 여성의 활약은 여성 독립 운동의 효시가 됐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지닌다.

1919년 1월 22일 고종 황제가 갑자기 승하하면서 일제에 의한 독살설이 유포되자 무단통치 10년 동안 쌓이고 쌓인 조선 민중의 분노가 3월 1일을 기해 폭발했다. 민족의 가슴에 당겨진 3·1운동의 불길은 서울을 중심으로 바람을 탄 들불처럼 번져갔다.
만세 운동이 확산되면서 참여 계층이나 저항의 형태도 다양해졌다. 3월에서 5월 사이 2백여만 명이 참여한 가운데 전국 210여개 곳에서 1,542회나 독립 시위가 일어나 온 나라를 만세 물결로 뒤덮었다. 이때 여성들은 소극적인 저항 운동의 형태를 탈피해 독립 만세 시위를 조직하는 주체로서 목숨을 건 투쟁을 벌여나갔다. 여성들은 남자에 비해 검열이 소홀한 점을 이용해 독립선언문과 독립국 상징인 태극기를 제작하고 배포하는 일을 도맡았다.

여성들은 장바구니나 아기 포대기 등 다양한 형태로 위장해 남자들이 꺼리는 일을 솔선해 성공시켰다. 또 이 과정에서 여성들은 일제 경찰에 의해 성적(性的) 모욕을 당하는 일까지 발생했지만 여기에 굴하지 않는 용기를 보여주었다.

3·1 독립 운동에 참여한 여성들은 새로운 근대식 학교 교육을 통해 계몽된 여학생이 많았다. 그 중 우리에게 익히 알려져 있는 유관순 열사는 이화학당의 학생이었다. 휴교로 잠시 고향에 내려온 그녀는 천안 아우내 장터에서 독립 만세 시위를 주도하였다. 또 서울의 경성여고보는 전교생 모두 독립 만세 시위에 참여해 큰 파장을 던져주었다.

3·1 독립 운동에는 여학생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천대받던 기생이나 백정의 아낙네들도 참여하였다. 특히 기생들의 만세 시위는 수원·해주·진주·통영 등에서 일어났다. 대표적으로 3월 29일 수원에서 기생들은 김향화를 중심으로 만세 시위를 조직하고 주도하였다.

1919년 9월 한국의 치안 책임자로 경성에 부임한 지바[千葉了]가 당시 기생들의 항일 정신에 대해 "800명의 기생은 화류계 여자라기보다는 독립투사라 하는 편이 옳을 듯했다. 기생들의 빨간 입술에는 불꽃이 튀기고 놀러오는 조선 청년의 가슴속에 독립사상을 불질러주었다.…간혹 우리 일본인이 기생집에 놀러가는 일이 있으면 태도는 냉랭하기가 얼음장같고 이야기도 않거니와 웃지도 않는다."라고 한 말은 지금도 우리의 마음을 자긍심으로 가득 차게 한다.

2003년 올해도 어김없이 3·1절이 찾아왔다. 국내외 항일독립운동의 정신적 지주가 된 3·1 독립운동은 독립을 향한 민족 단합과 정신력을 만방에 떨쳤다는 점에서 민족의 명절로 경축해도 결코 손색이 없다. 이러한 3·1 독립운동에서 여성의 역할을 주목하는 이유는 거친 역사의 격랑을 온몸으로 헤쳐온 우리 민족의 용기가 국가발전의 저력으로 계승되었으면 하는 바램 때문이다.

중국 현대 문학의 거장 루쉰(魯迅)은 ''길이란 본래부터 있지 않고 지나는 사람이 많다보면 그것이 곧 길이 된다''고 하였다. 당시 여성들은 사회 활동이나 교육의 뒤편에 있던 아웃사이더였다. 하지만 일제 탄압을 생활 속에서 겪으면서 독립을 절감하고 길이 없는 곳을 걷기 시작했다. 그때 만들어진 길은 현재 여성만이 아니라 우리 민족 모두의 가슴속에 걸어 가야할 민족 번영의 길로 펼쳐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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