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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2.15 10:3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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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제목 : ‘이라크 파병’ 논쟁과 역대 파병사 (국방일보)



제목 : ‘이라크 파병’ 논쟁과 역대 파병사

저자 : 군사편찬연구소 소장 하재평

수록 : 국방일보,2003.10.07

이라크 추가파병 관련 기사가 연일 국민적 화두(話頭)가 되고 있다. 그러나 국군은 지금 이 시각에도 세계 11개국, 15개 지역에 1300여 명이 파병돼 활동하고 있다.

또 역사적으로도 고려와 조선이 주변국의 요청을 수용해 전투부대를 파병한 사례가 빈번했으며, 가깝게는 유사 이래 최대 규모의 베트남 파병도 있었기 때문에 결코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앞으로도 국군의 해외파병은 유엔 평화유지군 등으로 인해 더욱 활발해질 전망이다. 따라서 과거 우리 민족이 생존과 안정, 주변국과의 협력관계 등을 고려해 국익 증진의 차원에서 추진했던 파병 사례의 역사적 교훈을 깊이 성찰할 필요가 있다.

13세기 후반, 고려는 몽골의 대제국 건설 야망에 따라 일본 원정에 두 차례나 파병했다. 몽골의 일방적 요청으로 찬반 논란의 여지 없이 강압적으로 결정됐다. 4만여 명의 전투 및 지원 병력이 참전하고 1800척의 전함이 동원됐다. 이에 따라 고려는 식량을 비롯한 각종 군수품까지 전담하는 등 엄청난 고통을 감수해야 했지만 국가 생존을 위해 파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어 15세기 후반, 조선이 여진 정벌 전쟁에 파병한 경우도 명나라의 강압적 요청에 따른 것이기는 하나 고려 때와 달리 파병 여부를 두고 조정(朝廷)의 여론이 찬반으로 갈라졌다. 그러나 세조는 명나라 헌종의 공식 요청서가 접수되자 양국의 우호관계를 중시해 1467년 1만 명을 파병했다. 그리고 12년 후에 다시 파병을 요청 받은 성종은 세조 때와 달리 결심과정에서 크게 고심했다. “파병이 국경분쟁의 불씨를 만들 것”이라는 반대론자들의 강력한 저항 때문이었다.

그러나 결국 성종도 “대명(對明) 우호 관계를 훼손할 수 없다”는 여론에 따라 1만 명을 파병했다. 그리고 독립된 지역에서 단독으로 토벌작전을 전개, 명군의 작전 전반에 크게 기여한 후 별다른 피해 없이 복귀함으로써 양국의 관계 개선과 함께 국위 선양에 결정적인 성과를 거둬 그 효과는 매우 컸다.

한편 17세기 전반, 광해군은 한민족 파병사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결정을 내려야 했다. “임진왜란 때 지원군을 파병했던 명나라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파병해야 한다”는 명분론자의 정치적 압박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명나라를 집어삼키려는 신흥 강국인 후금(後金)의 막강한 군사력을 무시할 수도 없었다. 후금과의 관계 악화는 곧 무력 침공을 불러들여 국가 존망의 위기를 자초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광해군은 고심 끝에 1만3000명을 파병, 명군을 지원하면서 후금과의 관계도 악화시키지 않는 방안을 모색했다. 명나라의 요청도 수용하고 강대국 후금의 침공도 예방하는 두 가지 성과를 거둔 리더십 발휘는 광해군의 냉철한 현실 인식과 지혜로운 판단 때문이었다.

그후 1654년과 1658년의 나선(러시아) 정벌군 파병도 청의 일방적 요청에 의해 추진됐다.

이러한 전통시대의 파병에 이어 1965년에 있었던 맹호·청룡부대의 베트남 파병도 역시 동맹국인 미국의 요청에 따른 것이었다. 6·25전쟁 때 도와준 자유우방에 보답하고 공산주의 확산에 공동 대처하면서 경제적 특수 효과를 기대한 명분과 실리 면의 선택이었다. 그 결과 64년 9월부터 73년까지 8년 반 동안 연인원 32만여 명의 참전은 우리 역사상 최대 규모로 최장기간 전개된 역대 파병사의 기록이었다.

베트남 파병에 따라 우리는 한·미 안보동맹체제와 국방력의 강화는 물론 이른바 50억 달러 규모의 ‘전쟁특수’를 통해 경제발전의 기초도 다질 수 있었다.

고려와 조선시대의 파병은 국가 생존 전략의 차원에서 추진된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찬반 양론이 대립해 심한 정치적 갈등을 빚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보다 효과적인 해결 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진통이었다.

오늘날의 파병은 과거의 역사적 사례와 또다른 측면에서 숙고해야 할 수많은 과제가 난마처럼 뒤엉켜 있다. 따라서 파병 여부를 결정하는 국가 지도자들은 ‘어떤 선택이 국익에 더 많은 도움이 될 것인가’를 고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라크의 현재 상황은 베트콩과 같은 적대세력이 명확히 존재하지 않는 특징이 있다. 따라서 이라크 파병부대는 베트남 파병과 달리 광의의 평화유지군으로서의 성격을 띠게 될 것이 분명하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트루먼 미 대통령의 한반도 파병을 위한 신속한 결단의 배경은 역사적 교훈과 강력한 힘을 바탕으로 한 미국의 위신에 있었다.

미 본토에서 낙동강 전선에 가장 빨리 도착한 미 제2사단의 파병 사례는 미국의 적시적·전략적 결심으로 한반도 자유민주주의 생존의 역사를 만들었다.

따라서 선택적 의사결정 과정에서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요소는 관련 국가와 협력관계 및 전략·작전 면의 불확실한 첩보를 확실한 정보로 인식하는 데 있으며, 희생을 최소화하면서 명분과 실리를 추구하기 위한 규모·지역·시간 등을 구체화하는 외교적 노력에 있다.

결과적으로 현 시점은 광해군의 냉철한 현실 인식과 역사적 파병 교훈을 오늘날의 신중론과 연결시킬 수 있는 역사적 혜안과 지혜가 필요할 때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 하재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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